삷의 여유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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삷의 여유와 지혜
  • 임영호 칼럼
  • 승인 2016.10.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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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인문학 노트] 책 속에서 길을 찾다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피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데 날이 갈수록 더욱 성의를 다하자, 어느 날 저녁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상제께서 너의 성의를 아시고 나로 하여금 네 소원을 물어오게 하였노라.” 선비가 대답하기를,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요, 감히 지나치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승에서 의식이나 조금 넉넉하여 산수(山水)사이에 유유자적하다가 죽었으면 족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낙인데,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부귀를 구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金.子 (금뢰자)』(P77)

요즈음 우리사회는 힐링(healing)이 키워드이다. 해마다 우리나라 사람 200만 이상이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꿈과 이상이 있다. 있는 자는 명예와 부에 골몰하여 죽을 때까지 분주하고, 없는 자는 없는 자대로 이 처지를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친다. 의식이 조금 넉넉하여 산수 사이에 유유자적 하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극락이건만 사람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하늘이 아끼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한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 날 때부터 이름이 주어지고 그 이름을 세상에 크고 아름답게 남겨지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요순(堯舜)시대 소부나 허유처럼 벼슬과 재물이 더럽다 하여 버리고 산림에 숨어 산다는 것은 아주 비장한 일이다.

《한정록(閑情錄)》은 조선시대에 살았지만 시대를 너무나 앞서간 풍운아 허균(許筠)이 42살 나이에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시문집 『성소부부고』의 부록으로 세상을 등지고 숨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에게 공명과 부귀를 아끼지는 않으나 한가한 것만은 아낀다.(중략) 높은 벼슬에 많은 녹을 받는 사람이나 좋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그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조용히 세속적인 데서 떠나 물러날 줄을 아는 자는 매우 적다. 그리하여 그들 중에는 날마다 재산을 모으고 좋은 집을 지으려는 생각뿐이나 한 번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죽고 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집에서 먹고 지낼 수만 있다면 정말 한가한 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좋을 텐데도 돈지갑만을 꼭 간수하려고 손을 벌벌 떨고, 금전출납부만을 챙기면서 마음을 불안하게 먹고 있다. ”『問奇類林 (문기유림)』(P191)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이 마치 달리는 말을 문틈 사이로 보듯 빠른데, 비 오고 바람 부는 날과 근심하고 시름하는 날이 으레 삼분의 이나 되며, 그중에 한가한 때를 가지는 것은 겨우 십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된다.”『山家淸事 (산가청사)』(P207)

이 책을 읽다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같다는 생각이 든다.분주하게 자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대적 삶,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사는 것이 아닌가? 「인생백년(人生百年)이란 마치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것」(何氏語林)이고 「세상살이는 사람에게 있어 여관(旅館)가 같은 것」(自警編)이기 때문에 벼슬아치들이 관직에서 당장 물러 날것을 대비하여 금방이라도 행장을 꾸릴 것 같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도 날마다 재물에 얽매여 있고, 명예욕으로 고된 세속 일에 끌려 다니니 인간이야 말로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이다.

마음이 멀면 산속에 사는 것이다

은둔이라고 하면 세상을 원망하며 속세를 등지고 깊은 산중이나 동굴에서 혼자서 살아가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세상 밖에서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동방삭(東方朔)의 지혜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조정 안에서 세상을 피할 수도 있다. 동방삭은 열선전(列仙.)에서「세속에 육침(陸沈)하며 이 세상을 피하노라. 금마문(金馬門) 안 궁궐 속에서도 세상을 피하고 몸보존할 수 있는데 어찌 꼭 깊은 산속 쑥대집 밑이어야 하리」라고 하였다. 또 한적한 시골에 있다할지라도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 사는 곳에 집짓고 있지만

수레의 시끄러운 소리 들리지 않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멀면 사는 곳이 절로 외지는 것이라오 (P108)

 

한가로운 삶은 자연을 벗하는 것이다

세상사는 일에 욕심을 버리고 유유자적한 삶을 즐길 때 가장 우선 할 일은 자연을 벗 삼는 것이다. 이는 한가로운 삶 가운데 기본이다.

“강산(江山)과 풍월(風月)은 본래 일정한 주인이 없고 오직 한가로운 사람이 바로 주인인 것이다.『蘇文公忠集 (소문공충집)』”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사람같이, 사람을 자연같이 대하면 흥이 나고 즐거워 외로운 법이 없다. 시인 천상병(千祥炳)은 귀천(歸天)에서 이 세상살이를 「이 세상에 소풍왔다.」 표현했다.

“왕휘지(王徽之)는 산음(山陰)에 살았다. 밤에 큰 눈이 내렸는데 잠이 깨자 방문을 열어 놓고 술을 따르라 명하고 사방을 보니 온통 흰빛이었다. 일어나서 거닐 때 좌사(左思)의「초은시(招隱詩)」를 외다가 갑자기 대규 생각이 났다. 이때 대규는 섬계(剡溪)에 있었다. 그는 작은 배를 타고서 밤새 가서 대규집 문에 이르렀다가는 들어가지 않고 돌아섰다. 어떤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흥이 일어와 왔기에 흥이 다하여 들어가니, 어찌 대규를 보아야 하는가”『世說新語 (세설신어)』(P180)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느냐는 자신에게 있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자유의지이다. 우리는 거리낌 없이 마음가는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잊는다. 신비스러운 골짜기나 오묘한 땅은 고상한 풍류를 지닌 사람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 보통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은 이유는 조물주가 몰래 보관해두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경솔하게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경(仙境)으로 이름난 무릉도원도 어느 어부가 우연히 들어갔던 곳이다. 그 선경을 영광스럽게 해줄 사람을 기다린다. 명멸하는 등불 아래서나 달빛 쏟아지는 저녁에, 가본 곳을 눈에 선하게 낱낱이 추억해 내어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소창청기(小窓淸記)에 쓰여 있는 것처럼 오랫동안 머무는 인연이 있어야만 비로서 허물없는 교우관계를 허락한다.

선비에게 책은 친구이다

한가한 선비가 자연을 벗 삼으면서 무엇으로 세월을 보내며 흥을 붙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글 읽기이다. 맑은 날 밤에 고요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달일 때, 낙엽이 진 나무숲에 세모는 저물어가고 싸락눈이 내리거나 눈이 깊게 쌓이고 마른나무가지를 바람이 흔들며 지나가면 겨울새는 들녘에서 우짖을 때, 온 세상은 죽은 듯 고요하고 간간이 종소리 들려오는 아름다운 정경 속에 방안에서 난로를 끼고 차 향기가 방에 가득할 때 책을 읽는다면 이보다 더 즐거움이 있을까? 선비에겐 책은 친구도 된다.

 

보지 못했던 책을 읽을 때에는

마치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볼 때에는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 같다.『眉公秘. (미공비급)』(P258)

 

현자는 마음가는대로 쉬면서 자신을 지키려면 물러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선비는 살면서 세상을 경영하는 포부를 갖는다. 벼슬자리를 박차고 오래토록 산림 속에 은둔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마음과 일이 어긋나거나 자기소신이 시대와 맞지 않고 몸이 쇠하면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이는 자기허물을 잘 고치는 것이다.

“나이 칠십에도 직위에 있는 것은 통행금지시간이 넘었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다니는 것이다.”『河氏語林 (하씨어림)』(P92)

“살다가 난세를 만나면 귀한 처지라도 능히 빈천할 수 있어야 죽음을 면할 수 있다.” 『金.子 (금뢰자)』(P93)

도연명은 『한낱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소인배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했고 후위(後魏) 가경흥(賈景興)도 늘 자신의 무릎을 쓰다 듬으면서『내가 너를 저버리지 않았노니 그것은 고관에게 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귀한 것이다.

허균은 왜 이 한정록을 만들었을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빚었을 것이다. 세 번의 귀양과 여섯 번의 파직을 당하는 굴곡 속에서 얼마나 마음에 응어리가 졌을까? 자기의 세상살이 벼슬살이에 후회를 했을 것이다.

“때와 운명이 맞지 않으므로 옛사람이 탄식한 바와 비슷한 데가 있다. 내 만약 몸이 건강한 날 조정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여 나의 천수를 다한다면 행복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겠다.”『한정록 서문』(P9)

그는 당시의 풍속이나 제도에서도 너무나 갑갑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사상적으로 자유분망한 사람으로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이며 선각자이다. 고승 사명당(四溟堂)과 막역한 관계였던 허균은 불가를 가까이 한다는 죄목으로 삼척부사에서 파직 당했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스승 이곡(李穀,)이 서출이라는 신분에 늘 마음을 아파했으며, 당시 보기 드물게 백성을 하늘로 여겨 백성은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자각하고 나라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임금도 갈아 치우는 혁명을 하여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豪民論)을 하며 서학도 일정부분 이해했던 그는 훗날 실학의 단초를 제공했다.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당시 천대받았던 언문(諺文)인 한글로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결국 자기의 희망인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역모혐의로 참수를 당한다. 그의 나이 50이다.

자기가 세상을 맞추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을 위한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허균, 그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이 혼탁한 세상에서 본성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로 그는 나에게 유유자적하게 삶을 즐기는 법을 전한다.

“사람들의 공통된 병통은 나이가 들수록 꾀만 깊어지는 데 있다.

무릇 부싯돌은 금방 꺼져 버리고 황하의 물은 수백 년 만에 한 번씩 맑아지는 법이다. 그러므로 세속에서 살려하거나 세속을 떠나려하거나 간에 모름지기 조화(造化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의 기미를 알고 멈춤으로서 조화와 맞서 권한을 다투려 하지 말고 조화의 권한은 조화에게 돌려주고 자손을 위해서는 복을 심어 자손의 복은 자손에게 물려준 뒤에 물외(物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고 눈앞의 맑은 일에 유의할 것이다.”『知非錄 (지비록)』(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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