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아름다운 명화
상태바
인생과 아름다운 명화
  • 임영호 칼럼
  • 승인 2016.12.08 1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호 인문학 노트] 책 속에서 길을 찾다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살면서 좋은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행복한 경험이다.”《삶이 그림을 만날 때》저자 안경숙씨는 말한다. 이 책은 부드러우면서 차분한 느낌이 든다. 잘 낫다고 불쑥 나오지 않는다. 명화라면 으레 주눅이 들어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하는데, 그림을 작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의 삶속에 녹여 소개하는 사이 우리 마음에 살짝 안기게 한다.

그리고 가끔씩 들려주는 작가나 그림속의 이야기, 관련 소설의 줄거리는 그림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림에 다가서게끔 용기를 준다. 이 책에서 80여개의 그림을 만난다. 어떤 것은 낯익지만 어떤 것은 낯 설은 것도 많다. 그러나 그 낯 설은 것조차 낯익은 것처럼 보인다. 이중 내 마음에 남긴 그림을 소개한다.

▲ 조지 클라우슨(George Clausen)의 《들판의 작은 꽃》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oshua Bell)이 알리지 않고 어마어마한 가격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출근시간대에 지하철역거리에서 거리악사로 연주했는데 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현대인들이 그저 앞만 보고 돌진하느라 음악 몇 소절이라도 귀 기울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그림 속 소녀는 무엇인가 몰입하고 있다. 자그마한 들꽃이지만 자연과 마주하면서 순간의 기쁨을 가지고 있다. 이순간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결국 행복도 품을 수 있다.

▲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의《뱀을 부리는 여인》

앙리 루소의 그림들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의 삶도 소박했다고 한다. 직장인 세관을 다니면서 여가시간에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일요화가인 셈이다. 루소는 정글 한번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뛰어난 상상력으로 문명의 파괴력이 미치지 못한 기쁨의 열대세계를 그렸다. 그의 강점은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니라 이런 풍부한 상상력으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에 있다. 예술가들은 루소의 작품을 회화의 알파요 오메가로 칭송한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 개념도 루소로부터 배워야한다. 루소의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그림은 지나칠 정도로 복잡한 현대인의 삶에 명쾌한 해답일 것이다.

▲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까치》

단원 김홍도 그림이 생각났다. 까치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새해 첫날을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순백의 눈으로 덮인 우리네 시골풍경과 같다. 모네는 회화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남겼다. 그가 1874년 전람회에 출품했을 때는 혹평을 받았다. 당시로써는 파격이었다. 그는 인상파의 창시자이다. 새 시대를 연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렵다. 그는 자연 현장에서 느낀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굉장한 열정을 쏟았고 노력을 하였다. 자연과 빛의 효과를 관찰하기 위하여 직접 야외에서 즐겨 그렸다고 한다.

▲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기도하는 손》

뒤러는 독일 르네상스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섬세한 표현이 마치 사진을 찍은 것 같다. 뒤러는 기도하는 손이 가장 깨끗한 손이고 가장 위대한 손이며 기도하는 자리가 가장 큰 자리며 가장 높은 자리라고 말한다. 삶의 구비 구비마다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엄마가 떠오른다. 그의 굵어지고 뒤틀린 손마디를 보면 숙연해진다. 이 그림을 탄생하게 한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그리기를 좋아하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둘 다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가난해서 학비마련이 어려웠다. 한 사람이 돈을 벌어 다른 한 사람의 학비를 대주기로 약속하고 심지 뽐기로 결정하였다. 뒤러가 뽑혀 먼저 공부를 하기로 했다.

세월이 흘러 뒤러는 금의환향했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도와준 친구를 찾아 갔다. 고된 노동으로 손이 굳어지고 뒤틀린 친구는 이미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 친구는 그럼에도 뒤러의 앞날에 축복을 비는 기도를 드렸고 이 기도를 우연히 듣게 된 뒤러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친구의 손을 그렸다고 한다. 친구란 두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실감 난다.

▲ 안 루이지 로데 트리오종(Anne Louis Girodet Trioson)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괴테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고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만의 소망이 있다면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다. 피그말리온은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한 조각가이다. 그러나 여자를 멀리 하려해도 쉽지 않았는지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했다. 작품은 완벽했다. 살아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교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사람의 마음은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다. 키프로스왕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연인으로 생각하여 틈만 나면 어루만지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 갔다. 때로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주워 선물했으며, 예쁜 꽃을 한 아름 안겨주기도 했다. 멋진 옷을 입혀 주고,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 주고, 목에 금목걸이를 걸어 주기도 했다. 밤이 되면 피그말리온은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정답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기념하는 축제에서 소원을 빌었다.

“여신이여, 바라건대 저 상아 처녀를 제 아내가 되게 하소서.” 집으로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여느 때처럼 조각상에 다가가 볼에 키스를 했다. 그런데 차가웠던 살결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눈을 들어 얼굴을 바라보니 여인의 양 볼이 수줍은 듯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기도가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여신의 축복 속에 피그말리온은 인간이 된 여인 갈라테이아와 부부로 맺어졌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창조자 피그말리온이 아닐까 싶다. 노력, 인내, 그리고 간절함이 하나가 될 때 그것은 이루어진다.

▲ 폴 고갱( Paul Gauguin )의 아레아레아(Arearea)

폴 고갱은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이다. 피카소, 앙리 마티스, 뭉크 등 20세기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도 모든 예술가들이 고민한 것처럼 예술이냐 삶이냐를 놓고 가시밭길인 예술을 선택하였기에 힘겨운 삶을 살았다. 그는 원래 세계 이 곳 저 곳을 여행하는 바다 사나이였다.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나서는 증권거래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서 미술품에 관심을 가지다가 조금씩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러다 프랑스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때 나이가 40이 넘었다.

그는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순수하고 원시적인 자연을 갈망했고 낙원을 찾겠다는 열망을 품고 살았다. 이에 대한 열망으로 증기선을 타고 프랑스 마르세유를 출발한 고갱은 수에즈 운하를 거쳐 망망대해 남태평양에 외롭게 떠 있는 타히티(Tahiti)에 정착했다. 그는 원주민과 친구처럼 지내며 그들의 삶에 동화되면서 그것을 그림으로 탄생시켰다. 고갱은 즐거움이란 뜻의 아레아레아 (Arearea)를 통하여 원시의 섬에서 신의 보호아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을 표현했다. 원주민의 건강한 인간성과 열대의 밝고 강렬한 색채로 그림을 채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절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했을 때는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상징적이고 주관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반 고흐는 인정했다. 화상(畵商)인 동생 테오 (Theo) 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라고 말한다. 그는 한때 프랑스 남부지방 아르(Arles)의 ‘노란 집’에서 경제문제로 생존자체가 절박한 고갱을 비즈니스차원에서 초청하여 함께 작업을 했었으나 견해 차이로 헤어졌다. 고흐가 귀를 자르는 사건이 벌어진 것도 이 때였다.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이 고갱의 삶을 〈달과 6펜스〉라는 제목으로 소설화했다. 생전의 반 고흐처럼 고갱도 살아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웠다. 물감을 살 돈이 없어 그 강렬한 그림은 엷어져 갔다. 고갱은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고갱은 자신의 이상만을 위해 가정을 버린 무책임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는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순수한 낙원만을 쫓았다. 고갱의 생애가, 가난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자유로운 가운데 죽을 때까지 불태웠던 예술혼의 흔적이, 지금 이 순간 작품 속에서 빛을 내고 있다. 우리는 폴 고갱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물 흐르듯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 책을 읽었다. 긴 한 번의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내 감정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그림의 매력이다. 저자의 글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면 무엇인가 나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즐거웠다. 저자의 서문에 실린 글을 옮기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속의 풍경까지 바꿔놓는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