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희망을 심은 사람 사타시 쿠마르 <끝없는 여정>
상태바
평화와 희망을 심은 사람 사타시 쿠마르 <끝없는 여정>
  • 임영호 칼럼
  • 승인 2016.12.30 1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호 인문학 노트] 책 속에서 길을 찾다
▲임영호 코레일 상임감사

무일푼으로 수억 마일을 걸으면서 평화와 희망을 심은 사람

“우리의 여행은 최종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과 목적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흐르는 강물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강과 강물의 흐름이 하나이듯이 나 자신과 나의 모든 움직임 또한 하나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곧 여행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세계로 떠나는 여행 이었습니다.”

〈끝없는 여정〉의 저자 사티스 쿠마르. 끝없이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작은 승려, 살아 있는 간디, 평화주의자, 녹색혁명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티스 쿠마르는 생각만 하고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인가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사티스 쿠마르는 인도 사람이다. 영국의 시골마을 하트랜드에서 녹색운동의 잡지<소생 Resurgence>, 생태교육기관인 슈마허대학, 아이들을 위한 작은 학교인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인간과 인류 문화에 희망을 주고 있지만 그의 정신적 토대와 실천적 행동은 그의 조국 인도에서 이루어진다.

영화 <시티오브조이>에서 주인공 맥스가 의사로써 실패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온 나라가 인도이고, 통일신라시대 승려 혜초가 구법을 위하여 여행한 곳도 천축, 지금의 인도이다. 인도는 인간의 본질, 삶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신비의 국가인 것 같다. 척박한 지역이 더 많은 끝이 없는 땅과 12억 이상의 인구, 아직도 천민이 존재하고, 수천 명 의 노숙자가 거리에 널려 있으며, 소가 역 광장을 휘젓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볼 때 무엇인가 무척 배고파하는 모습의 나라이다.

사티스 쿠마르는 변변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특출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인도의 스리둥가가르 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그를 잉태 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을 풀이한 승려는 사티스 쿠마르가 어머니의 이루지 못한 소망을 안고 태어났으며, 부귀영화와는 인연이 없고, 끝없이 방랑하는 인생을 살아가리라고 예언했었다. 정말 그 예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어머니는 자이나교의 충성스런 신자였다. 몇 주일 동안 승려들과 여행하면서 설법을 듣고 경전을 읽으며 여러 마을을 따라 다닐 정도였다. 그는 7살 때 한 스님을 만나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그를 해탈의 세계로 이끌어 줄 것이며 깨달음을 줄 것 이라고 확신했다. 자이나교의 교리는 그의 정신적 토대와 몸가짐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대, 이제 승려가 되었으니 걸을 때는 반드시 앞을 자세히 살펴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명도 밟지 않도록 하여라. 그리고 앉거나 누울 때는 반드시 바닥을 부드럽게 쓸어내어 하나의 생명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고 언제나 상냥하고 절도 있게 말하도록 하여라. 그대는 정해진 주거지를 소유해서도 안되고, 한번에 30야드 이상의 옷감을 몸에 걸쳐서도 안된다. 방석이나 이불을 사용해서도 안 되고, 밤에는 물이나 음식, 약을 먹어서도 안 된다. 낮잠을 자서는 안 되며, 여행을 할 때는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한다. 신발이나 슬리퍼를 신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짐은 스스로 짊어지고 다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면도칼을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뽑아서 없애야 한다.”

승려들은 하루하루 이 동네 저 동네를 탁발하여 생계를 이어 나간다. 탁발을 통하여 겸손과 인내를 배우고,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탁발하는 승려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것이 아니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규율을 지켜야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말했다.

“당신들은 건강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 같은 승려들은 스스로 일을 해서 먹고살 생각은 하지 않는 거죠?”

승려들은 곡식을 가꾸고 음식을 요리 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해 음식을 탁발해 먹는데. 신도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요리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사티스 쿠마르는 속세와 담을 쌓고 오직 신만을 추구하여야 된다는 가르침에 회의를 갖게 된다. 특히 어느 평신도가 준 간디의 책은 깨달음의 큰 계기가 된다.

종교가 인간을 삶과 현실에서 등 돌리게 한다면 그것은 현실 도피일 뿐이며, 진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 깃들여 있으니 개개인은 자신의 삶 속에서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간디의 주장이었습니다.

사티스 쿠마르는 태몽처럼 어머니의 소망과 정반대로 9년 동안의 승려생활을 마감하고 환속하여 고향에 돌아왔다. 미래에 대한 걱정, 어머니의 절망, 자이나교 사회의 배척을 염려 하는 동안에 근처 학교의 선생님이 비노바 바베(vinoba Bhave)를 찾아가라고 권유하였고, 아시람(ashram,사원)의 생활과 그 속에 깃들인 철학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아시람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로 스스로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아시람의 생활은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다. 오전에는 적어도 4시간 농사를 짓거나 옷감을 짜는 육체노동을 하고 오후에는 시를 짓거나 그림이나 음악, 지역봉사나 정치, 사회활동 등 각자 원하는 것을 한다.

그 곳에서 만난 아시람의 선임자가 갓 들어온 사티스 쿠마르에게 한 말이다.

“당신이 승려였을 때는 머리로 명상만 해서, 손을 움직여 생산적 활동을 하는 건 상상도 못했겠죠. 하지만 이제는 정신과 육체, 머리와 손을 모두 이용해서 우리를 품고 있는 대지를 섬기며 그 안에서 일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는 길이니까요.”

아시람은 또 토지의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구심점 같은 곳이다. 대다수 소작농들이 소수의 대지주와 부자들에게 착취당하는 현실 속에서 아시람속에서 그들만이 자족하여 안락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시람 동료들은 부단(Bhoodan)운동. 즉 주민들에게 토지를 분배 하자는 운동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었다. 비노바 바베는 전국을 순례하며 이 운동을 펼치는 중심적인 지도자였다.

비노바 바베가 사티스 쿠마르에게 말했다.

“승려의 삶을 버림으로써 너는 참된 구도의 길을 찾게 된 것이다. 현실을 저버린 채 구도의 길을 걸어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리고 기억해 두어라. 승려의 직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진 것처럼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말아라. 삶이 이끄는 대로 그냥 흘러가라. 우리는 끊임없이 흐름으로써 깨끗함을 유지하는 강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

아시람에 있으면서 새로운 일거리를 갖게 되었다. 지주에게 억압받는 가장 낮은 계급인 천민인 불가촉민(不可觸民 untouchable people)을 위한 일이다. 그들은 영양실조인 상태로 질병과 가뭄에 시달리고 자식까지 도시로 팔려 나가는 한낱 노예처럼 살고 있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가난은 신이 내린 게 아닙니다. 가난은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당신의 권리입니다.”

사티스 쿠마르는 열등감과 무력감에 빠진 그들에게 단결하도록 용기를 주었고 함께 투쟁도 하고 불모지의 땅에 우물도 파는 등 함께 일도 같이하면서 그들이 가진 나쁜 관습도 고치려고 하였다. 그러던 중 비노바 바베를 직접 만나 그와 대화도 나누었고 그의 철학도 들었다.

“그람단(Gramdan 토지의 마을공동소유운동)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힘을 발휘해 정부의 보호와 간섭 없이도 꾸려 나갈 수 있는 자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게다가 만약 내가 정치에 뛰어 든다면 지금처럼 여러분들과 함께 걸으며 거리낌 없이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비노바 바베와 그의 일행들은 가난한 자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고통을 깨닫고 자발적인 토지 기증을 통하여 가난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득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변화의 싹을 틔우는데 노력했다. 비노바 바베의 노력으로 1600만 평방킬로미터의 토지를 모으고 수천 개의 마을에 이런 그람단(Gramdan)을 퍼뜨렸다.

비노바 바베와 함께 순례하는 동안에 간디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비노바 바베는 간디의 신실한 추종자이다.

“비노바는 비폭력이 침묵만은 아니며, 단순히 인간 대 인간으로서 육체적·언어적 폭력을 자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전체와 맺는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그것은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비폭력과는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승려로 있을 때에는 비폭력을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보다는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형태의 착취도 역시 폭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티스 쿠마르는 아침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던 중 동료 프라브하카가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런던에서 반핵 시위도중 체포 되었다는 기사를 읽어 주었다.

“아흔 살 노인도 인류를 위하여 감옥에 가는데 젊은 우리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프라브 하카는 핵보유국인 소련,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 수도를 순례 하면서 반핵 운동하는 것을 제안 하였다. 사티스 쿠마르는 인류를 위한 일에 뛰어 들겠다는 생각에 동료인 프라브하카와 함께 인도 델리에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까지 걸어서 평화를 위한 시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작하는 첫 날은 1962년 5월10일이다. 비노바 바베는 떠나는 두 사람 에게 두 가지 무기를 선물하였다.

“비폭력을 따르는 자도 거기에 합당한 무기를 지닐 수 있다. 첫 번째 무기는 어디를 가건 채식주의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단 한 푼도 몸에 지니지 말라는 것이다.”

“채식을 계속하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오래 여행해야 하는데 돈을 가져가지 말라니요?” 내 물음에 비노바 바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항아리는 비어 있어야만 속을 채울 수 있는 법, 참된 인간관계에 돈은 장애가 될 뿐이다. 순례를 하다 지쳤을 때 돈이 있다면 호텔에서 잠을 자고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할 테니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돈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도움을 받게 되었을 때 자네는 ‘저는 채소만 먹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물을 것이고, 그러면 비폭력과 평화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과 친분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사티스 쿠마르는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이란, 소련, 폴란드, 동독, 서독, 프랑스, 미국, 일본을 거쳐, 인도 델리로 돌아 왔다. 끝없는 사막과 험악한 폭풍우, 눈보라, 감금과 총알 세례로 생명을 위협 받았으며, 각 국의 냉대와 방해, 무시에 굴하지 않고 2년 반 동안 무려 1만 4천 킬로미터를 도보와 무일푼으로 평화 순례를 하였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러시아의 아르메니아를 순례할 때 한 여성이 4개국 지도자들에게 전달하여 달라고 차(茶)상자 네 개를 들려주었다.

“제발 이 차들을 소련 서기장과 프랑스 대통령 영국 수상 그리고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주세요. 그리고 만약 핵폭탄 발사 단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잠깐만 모든 행동을 멈추고 이 차를 한잔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인간은 사는 동안에 수많은 대지 위에 두 다리로 걷고, 사람을 만나고, 관성적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목표가 있는 길을 걷는다. 하나의 길이 끝나면 다음의 길로 이어지고, 그 길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우침과 도전의식을 갖게 해준다.

사티스 쿠마르의 여정, 그의 끝없는 여정은 그래서 아름답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가문의 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