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황제도 괴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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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황제도 괴로운 '삶'
  • 탄탄스님
  • 승인 2019.05.1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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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출강)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동국대 출강)

음력 사월 초파일이 벌써 눈앞이다.

산승도 백내장 수술에 당뇨를 심하게 앓고 보니 어느덧 인생무상이 더욱 절박하여져서인가? 생에 대한 허무한 감정은 더욱 진하여 진다. 신새벽 동이 채 뜨지 않은 먼 산을 바라다보기도 하고, 다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다 갑자기 눈앞이 희뿌연 안개에 가려진듯하다. 미쳐 다 마치지 못한 백내장 걸린 눈 한쪽 눈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듯 이물감이 더욱 더해져서 인가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청춘은 가고 어느새 반백이 되어가는 중늙은이의 몰골에 서글픔이 더해간다.

문득 오늘은 순치 황제(順治皇帝)가 출가하며 지은 시가 생각난다. 순치 황제는 청나라 세종(世宗)인데, 재위 18년(1644~1661) 동안 만주와 중국까지 통일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서에는 재위 10년 만에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 시를 보면 18년 되는 해에 세속을 버리고 입산하여 중이 된 것으로 되어 있다.

‘가사 입고 스님 노릇을 하는 것이 귀한 일이지 황금과 보석이 무엇이 그리 귀한가’라는 물질과 재산과 명예에 초연한 모습. 전생에 인도의 스님으로 산길을 가다가 쉬고 있는데 들판에서 왕의 행차가 길게 늘어져 있고 풍악이 울리며 호위가 삼엄한 광경을 보고 ‘왕 노릇도 한번은 해볼 만한 일이구나’하고 생각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뒷날 황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출가시에 그것을 후회하니,

天下叢林飯似山(천하총림반사산)
鉢盂到處任君餐(발우도처임군찬)
黃金白璧非爲貴(황금백벽비위귀)
惟有袈裟被最難(유유가사피최난)

朕乃大地山河主(짐내대지산하주)
憂國憂民事轉煩(우국우민사전번)
百年三萬六千日(백년삼만육천일)
不及僧家半日閑(불급승가반일한)

悔恨當初一念差(회한당초일념차)
黃袍換却紫袈裟(황포환겁자가사)
我本西方一納子(아본서방일납자)
緣何流落帝王家(연하류락제왕가)

未生之前誰是我(미생지전수시아)
我生之後我爲誰(아생지후아위수)
長大成人纔是我(장대성인재시아)
合眼朦朧又是誰(합안몽롱우시수)

百年世事三更夢(백년세사삼경몽)
萬里江山一局碁(만리강산일국기)
禹疏九州湯伐桀(우소구주탕벌걸)
秦呑六國漢登基(탄진육국한등기)

兒孫自有兒孫福(아손자유아손복)
莫爲兒孫作馬牛(막위아손작마우)
古來多少英雄漢(고래다소영웅한)
南北東西臥土泥(남북동서와토니)
來時歡喜去時悲(내시환희거시비)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

모두들 ‘나다’, ‘나다’라고 하지만 눈을 감으면 참 나는 어디에 있는가?

세속의 어떤 성공도 모두가 결국에는 허망한 것

예부터 어떤 영웅호걸도 모두가 한 줌의 흙

자식들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자식들은 다 자식들의 삶일 뿐

먹는 것은 소채뿐이요, 입는 것은 누더기

천하에 걸림 없는 나그네가 되어

가고 싶은 곳은 마음대로 가니

더 이상 다시 무슨 근심 걱정이 있겠는가

아, 상쾌하고 통쾌하고 유쾌하다

......

천하 어디를 가나 모두가 총림이요

먹을 밥은 산처럼 쌓여 있어

발우만 들면 어디를 가든 마음대로 먹을 수 있네

황금도 흰 구슬도 귀한 것이 아니다

오직 가사를 입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다

짐은 산하대지의 주인으로서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여 마음이 무거웠는데

임금으로서의 백 년 삼만 육천 일이

총림(절)에서의 한가한 반나절만 못하더라

지난 세상 한 생각 잘못하여

가사로써 임금의 황포와 바꿔 입었네

나는 본래 서방의 한 수행납자였으니

무슨 인연으로 제왕의 집에 태어났던가

태어나기 전에는 누가 나였으며

태어난 이후에는 내가 또한 누구인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겨우 나라고 하지만

눈을 감으면 아득하여라

이 또한 누구인가

백년의 세상사는 하룻밤의 꿈이요

만리의 강산은 한 판의 바둑일세

우임금은 구역을 나누어 나라를 잘 다스렸고

탕임금은 걸주를 쳐서 나라에 평화를 가져왔다

진나라는 여섯 나라를 통일시키고

한나라는 기반을 구축하였다

자손들은 스스로 자손의 복이 있으니

자손들을 위해서 소나 말이 되지 말라

예부터 그 많은 영웅호걸들 동서남북에 모두 흙이 되어 흩어졌네

태어날 때는 기쁘나 죽을 때는 슬픈 것

공연히 인간 세상에 와서 한바탕 돌다 가네

차라리 오지 말고 가지도 않는다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을 것을

나날이 맑고 한가한 맛 스스로 알 뿐

자욱한 먼지 세상 그 고통 떠났도다

입으로 먹는 것은 맑고 담박한 음식이요

몸에 걸치는 것은 누더기뿐이로다

다섯 호수 사방 천지 나그네 되어

이 절 저 절 소요자재 마음대로 드나든다

입산출가를 쉽다고 하지 말라

세세생생 쌓은 인연, 그 뿌리가 있어서다

18년의 왕 노릇이 너무나 힘들었네

방방곡곡 일어나는 전쟁 그 언제 그칠런가

나는 이제 손을 털고 산으로 돌아가니

천만 가지 근심걱정 무슨 관계가 있을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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