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상태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 탄탄스님
  • 승인 2019.07.09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용인대 객원교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법정에 나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언급한 페테르 루벤스의 그림 ‘시몬과 페로’가 세간의 관심으로 등장했다.

배우고 출세한 자가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변론하며 미술품을 등장케 하는 경우도 흔치 않은 일 이었지만, 그러나 그 변론에는 그리 적합한 비유는 아니었다고 본다.

국정 농단에 이어 법정농단에 비유되는 법률가들의 비양심적인 행위에 치를 떨지만 속히 공정한 법률 시스템이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

‘시몬과 페로’의 숨은 의미는 부정으로 보는 겉모습의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진실을 보아야 한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젊은 여인이 부끄럼도 없이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고 반라의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화가 루벤스가 그린 작품으로 바로크 양식화의 수작으로 통한다.

루벤스는 부와 명예를 누렸던 몇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다. 6개 나라의 말을 할 줄 알았고, 외교관이자 그림을 제작 판매하는데 있어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마케팅의 대가였다.

화가로 이름을 날릴 때는 뛰어난 그의 제자들이 거대한 그의 공방을 지키고 있었다. 세부적인 것들은 제자들이 준비를 하고, 그는 전체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분업을 통한 작품 제작을 했다.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하였다고 한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그렸고 지금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입구에 걸려 있으며 실화를 바탕으로한 그림의 제목은 시몬과 페로 (Cimon and Pero)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다가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당황스러워 한다. 딸 같은 여자(페로)와 놀아나는 노인(시몬)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그린 작품이라면서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포르노 같은 그림이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노인과 여인’ 에 깃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비난을 서슴지 않았지만, 그림속에 담긴 본질을 알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진지하게 감상한다.

그림 속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이름은 ‘시몬’이고 젖을 물리고 있는 사람이 그의 딸 ‘페로’이다.

이 그림은 고대 로마의 역사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기원 후 30년경에 펴낸 <로마의 기념할 만한 업적과 기록들>에 실린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오래된 책에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형제 사이의 우애, 조국에 대한 충성이라는 오늘날에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사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이 그림처럼 페로와 시몬의 이야기가 가장 시선을 끈다.

관람객들은 이 그림 앞에서 숙연해 지며 심지어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데,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딸과 젖을 빨고 있는 검은 수의를 입은 아버지, 이 그림의 주인공인 시몬은 푸예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자 이다. 

늙은 몸으로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뜻있는 운동에 참여했지만 국왕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고 국왕은 그를 교수형에 명하고 교수될 때까지 아무런 음식도 갖다 주지 않은 형벌을 내렸다.

‘음식물 투입금지’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갔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딸은 해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으로 갔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본 순간, 물 한모금도 못 먹고 눈은 퀭한 모습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 핏발이 섰다. 굶어 돌아가시는 아버지 앞에서, 마지막 숨이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었다. 그리고 불은 젖을 아버지 입에 물렸다. 이 노인과 여인의 그림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하나의 그림을 놓고 어떤 사람은 ‘포르노’라고 비하하기도 하고, ‘성화’라고 격찬하기도 한다. 피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틀린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가끔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남을 비난하기도 한다.

진실을 알면 시각이 확 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남에게 속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의 무지에 속는 것이다. 자신의 눈에 속지 말고 귀에 속지 말며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한다.

문득 이 그림이 주는 교훈은 가슴을 후비며 누군가에게 전해졌음 하는 생각으로 다시 사족이 길다.

루벤스의 작품 ‘시몬과 페로’는 곡해된 측면이 많다. 이는 그림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거벗긴 채 두 손이 묶인 한 노인이 젊은 처자의 젖을 빨고 있는 그림은 그 진실을 모르고 보면 참으로 음탕한 그림일 뿐이다. 더구나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창문 뒤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는 두 명의 병사들 표정은 야릇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 그림의 주제는 효성이 지극한 자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음탕함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림이다. 아무리 물질 만능 주의와 인간성 상실의 세기말적인 징후로 타락하여 인간이길 거부하는 말종들이 세상에 득세한다고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큰 덕목은 역시 ‘효’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