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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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의 교훈
  • 탄탄스님
  • 승인 2019.08.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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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자장암 감원,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자장암 감원, 용인대 객원교수)

나라꼴이 참으로 어수선하여 변방의 무지한 일개 산승도 분개하여 졸필이라도 써야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예부터 이나라 국토가 전쟁의 참화로 초토화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적 실리를 얻지 못하고 대립각을 세우면서였다. 그 중 가장 큰 참화를 든다면, 약소한 국방력과 내치도 감안 못하여 스스로 침략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었다.

우리 역사의 치욕이었던 임진년의 왜란과 병자년의 호란이 일어난 원인은 명백하게 외교력의 실패였음이며 가장 큰 전쟁발화의 원인이었음이 역사적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를 깔보고 신흥 강대국인 청의 존재를 과소평가했으며 당시의 국제 정세에 무지한 통치자의 무능과 정보력 부족이 전쟁의 처참함을 초래케 하였고 많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수백 년 전의 통치자들과 현재의 한국 사회의 지배계층이 꼭 닮은 꼴인지. 당시 중앙의 관료들과 유생들이 당쟁에 몰두하며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했듯이 오늘날 집권당과 야당은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국익과 실리외교는 잊은 지 오래이며, 왜놈들의 침략의 징후조차 은폐했고 반드시 침략하리라는 징후가 있었음에도 대처할 태세도 갖추지 못하여 국토가 유린당하고 역사의 퇴보를 초래했던 시대적 배경이 너무도 흡사한 형편이어서 두렵기 조차 하다.

임진년 왜란 당시에 나라의 피해는 참혹하였으며 인구는 줄고 농경지는 피폐해지고 문화유산의 약탈 파괴가 자행되었으며 당시 수도 한양의 옛 궁궐도 대부분은 거의 다 파괴되어 17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재건축된 것이다.

그보다 더 참혹했던 인명피해는 형언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눈물겨웠으며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침략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지시로 죄 없는 조선민중의 코 2만 명을 매장한 무덤이 학살의 명백한 증거로 현대의 일본에 있었으며, 10만 명도 넘는 인명을 죽이고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전리품으로 일본 땅에 묻어 버렸던 그 왜놈들의 잔인함과 무지막지한 폭력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조선의 선진 문물을 파괴하였고 막대한 자원을 강탈해 갔으며 또한 뛰어난 장인들을 모두 강제로 잡아가서 도자기와 직물 기술을 발전시키고 제 놈들의 잇속을 채우며 발전해온 강도의 나라가 일본이다.

왜란 당시 국가의 존재는 없었으며 조정은 도망 다니기 바빠 민초들을 돌볼 여력조차 없었다.

지방의 이름 모를 선비와 농민으로 구성된 ‘의병’이 도처에서 불처럼 일어나 고을을 지키고 왜놈들의 보급을 차단하고 민족의 성웅 이순신이 호남평야로의 접근을 차단하며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몰고 열세의 전쟁을 뒤집어 놓고 왜놈들을 격파하였기에 조선 침략을 물리친 것이다.

당시의 국가와 정부는 무얼 하였는가, 방어선이 무너지니 선조임금과 신하들은 명으로 망명하기 위해 수도를 버리고 북으로 도망치기 바쁘고 조총 한 번 제대로 쏘지 않고 한양을 점령한 히데요시의 잔혹한 부하들은 약탈과 방화로 전국토를 파괴하고 유린하였다. 당시 유약하고 어리석은 통치자를 만난 백성의 고초는 형언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조선의 상황은 말 그대로 천하태평이었으며 붕당이 형성되어 서인과 동인의 당쟁으로 사회적 혼란은 접입가경이었으며 국방력은 약화되어 전쟁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율곡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지만 각료들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라가 태평하다 보니 군대와 식량이 모두 준비되어 있지 않아 오랑캐가 변경을 소란하게 하여도 온나라가 술렁입니다. 이 상태로는 적이 한번 침범해왔을 때 어떤 지혜로도 당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정병 10만 명을 양성해 남쪽의 일본과 북쪽의 여진에 대비해야합니다”라고 상소 하였지만 결국 현실화 되지못하고 일방적으로 참패한 전쟁이었다.

당시의 천추의 후회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국방개혁도 시급하게 서둘러야한다. 근대의 시점에서 36년 일제 침략기의 참혹한 피해의 수백 배는 더 되었을 임진왜란을 뼈 속에 각인하지 않고 역사적 교훈을 깨닫지 못한다면 또다시 왜놈들 세상이 될 것은 자명하다.

자국의 실리 외교만을 앞세우는 국제정세에도 더 이상 밀리지 않으려면 당리당략을 멈추고 무엇보다 국익과 부강한 나라가 우선 되어야 함을 직시하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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