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고택] 건축풍류의 정수, 흐르는 물 위에 지어진 ‘남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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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고택] 건축풍류의 정수, 흐르는 물 위에 지어진 ‘남간정사’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09.06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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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정사
남간정사

대전 동구 가양동에 위치한 남간정사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선생(1607~1689)이 유림과 제자들을 모아 학문을 익히던 곳으로, 그의 사후에는 유림들이 목판을 새겨 송자대전(宋子大全)을 펴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남간(南澗)이란 양지 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의미하는데, 주자의 시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따온 이름으로 주자를 사모한다는 뜻을 가진다.

남간정사는 겹처마 팔작지붕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중앙 2칸 통칸에는 우물마루의 넓은 대청을 들였다. 대청 왼쪽은 전후 통칸의 온돌방이며, 오른쪽은 뒤쪽 1칸을 온돌방으로 하고 그 앞 1칸은 아궁이 ‘함실’을 설치하기 위해 대청보다 조금 높여 우물마루를 들였다. 이 건물은 정면이 아닌 뒤로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대청 밑은 개울물이 흐르는 암반 위 양편에 축대를 쌓아 마루 밑을 넓게 파놓았다. 수로에는 높은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얹어 대청마루가 높이 뜨도록 하였다. 건물 네 귀퉁이에는 모양이 다른 팔각주초석에 활주를 세워 길게 뻗은 처마를 받쳐주고 있다.

남간정사 앞 연못
남간정사 앞 연못

정사의 앞에는 자연 지형에 따라 만든 자연형 연못이 있으며 가운데에는 둥근 섬을 하나 두고 왕버들을 심어 두었는데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을 의미한다. 연못의 수원은 정사 뒤의 샘물과 동쪽 개울의 물을 끌어 들였는데 샘물은 정사의 대청 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들게 하였고 개울물은 얕은 작은 폭포를 형성케 하여 흘러들게 하였다.

우리나라 정원은 자연 경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차경(借景)의 원리를 이용, 정원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남간정사는 흐르는 물위에 건물을 지음으로써 좀 더 적극적인 차경을 도모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청 밑과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연못에 투영된 아름다운 풍광 등 시청각을 적절히 이용하여 자연에 동화되는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조원(造園) 유적이다.

기국정
기국정

남간정사 영역 내에는 소제동에서 옮긴 기국정(杞菊亭)이 연못에 접하여 배치되어 있고, 정사 뒤편 높은 곳에는 남간사(南澗祠)가 있다.

기국정은 우암이 손님맞이를 위해 세운 정자로 당초 소제동의 소제호 주변에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소제호가 매몰되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처음에는 연당(蓮堂)이라 불렸으나 주변에 구기자와 국화가 무성하여 구기자의 ‘기(杞)’자와 국화의 ‘국(菊)’자를 따서 기국정이라 이름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간결하고 단순한 형식의 건물로 2칸 통칸의 대청과 온돌방 1칸 반, 그리고 반 칸의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남간사
남간사

남간사는 남간정사 후면에 있는 사우로 1677년 회덕(懷德)의 유생들이 이 사우를 짓고 주자(朱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석곡 송상민 (石谷 宋尙敏), 수암 권상하(遂菴 權尙夏)를 배향했다. 현재는 우암 사적공원 조성 시 새로 지어진 남간사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도움 : 대전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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