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고택] 조선시대 교육·자치의 중심, 600년 역사 ‘회덕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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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고택] 조선시대 교육·자치의 중심, 600년 역사 ‘회덕향교’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09.11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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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덕향교 전경
회덕향교 전경

회덕향교는 1406년 태종 6년에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려 1600년 선조 33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향교는 성현에 대한 제사와 후학에 대한 교육, 지역사회의 민풍교화(民風敎化)라는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향교에는 성현들의 훌륭한 덕을 기리기 위한 제사(祭祀) 공간과 기본적인 교육을 위한 강학(講學) 공간이 있었으며, 배우는 단계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를 위해 적극적인 실천까지 포함한다.

향교는 입구에는 하마비(下馬碑), 홍살문, 그 뒤에 솟을대문형으로 된 외삼문(外三門)을 세웠다. 대문 바로 안쪽 건물에는 중앙으로 통행할 수 있는 문을 두었고, 문의 동쪽 건물에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을, 서쪽에 공부하던 서재(書齋)를 배치하였다.

회덕향교 명륜당
회덕향교 명륜당

이 건물 뒤편에는 수업을 받던 명륜당(明倫堂)이 있으며, 그 뒤 10단의 계단 위에 솟을삼문으로 된 내삼문(內三門)과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다.

회덕향교의 강학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강당으로 실내의 사면 벽에는 교육지침이나 향교의 연혁 및 중수기 등을 적은 글들을 걸어 놓고 있다.

또한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유현(儒賢)과 조선의 18현(賢)의 위패를 모셔놓고 매년 음력 2월, 8월의 상정일에 석전제(釋奠祭)를 지내고 또 매달마다 삭망례(朔望禮)를 올리고 있다.

회덕향교 석전제

향교에는 학생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기숙사 제도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동·서 양재가 곧 그것이다. 회덕향교의 동·서 양재는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좌우로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고 그 터만이 남아 있다. <도움 : 대전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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