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고택] 임진왜란·철폐령 버텨낸 유림의 절개 ‘숭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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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고택] 임진왜란·철폐령 버텨낸 유림의 절개 ‘숭현서원’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09.2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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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원촌동에 위치한 숭현서원(崇賢書院)은 초창 시기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의 배향 인물 중 시기가 가장 늦은 규암 송인수(1499∼1547)가 서거한 1547년(명종 2)을 기준으로 볼 때 16세기 후반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숭현서원은 처음에 충암 김정(沖庵 金淨)·수부 정광필(守夫 鄭光弼)·규암 송인수(圭庵 宋麟壽)를 배향하는 사우로 용두록(현재 중구 용두동 일원 추정)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에 송남수(宋枏壽)가 다시 이건하여 세우면서 ‘삼현서원(三賢 書院)’이라 개칭하였고 뒤에 조정에 청액(請額)하여 숭현(崇賢)이라 사액됐다.

이건 당시에는 3인만을 배향하였으나 1646년(인조 24)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을 추가로 배향(配享)하였다. 1641년(인조 19)에는 죽창 이시직(竹窓 李時稷)과 야은 송시영(野隱 宋時榮)을 위한 별사(別祠)를 서원 안에 따로 지어 배향하였다가, 1667년에 본당으로 올려 동서(東西)로 배향했다. 1681년(숙종 7)에 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과 1695년(숙종 21)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을 배향하여 모두 8인을 모시게 되면서 ‘팔현묘(八賢廟)’라 불리기도 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667년(현종 8)에 세운 묘정비(廟庭碑)만 남기고 훼철 된 후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하다가 1994년 발굴 조사를 실시해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교육 장소인 강당, 이시직과 송시영의 위패를 모시던 별사 등의 건물 터를 확인한 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8년에 걸쳐 복원했다. <도움 : 대전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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