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적응보다 더 어려웠던 ‘아이 교육’
상태바
[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적응보다 더 어려웠던 ‘아이 교육’
  • 김서연(중국)
  • 승인 2019.09.24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5)

안녕하세요? 저는 중국에서 온 김서연입니다. 6년 전 따뜻한 봄날 저는 한국에 왔습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여동생을 보는 순간 반갑고 기뻐서 한참을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인천공항 식당에서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짜장면을 먹고 나서 공항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오면서 한국적인 건물과 풍경을 보면서 ‘와~ 한국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습니다. 그 순간 마냥 기뻐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깨달았습니다. 한국생활에 대한 신기함이 막막함을 덮어 버렸어요. 저보다 한글의 ‘ㄱ’도 모르는 애들의 학업과 학교생활이 더 태산이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활기차게 뛰어 노는 애들을 보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봤지만 잠깐이었습니다. 놀이터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들끼리만 노는 상황을 보면서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찾아다녔습니다,

다행히도 초등학교 다문화반이라는 곳에서 한글부터 한국문화, 한국생활 적응까지 도와주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다문화반에서의 적응기간이 끝나면 일반반으로 갈 수 있는데, 학생 본인에 따라 기간이 정해집니다. 그 외에도 저희가 도움을 받았던 다문화복지가 아주 많은데요, 다문화가족사랑회 등 복지센터에서 대학생 멘토링을 소개시켜주시고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의 한국어가 생각보다 빨리 늘었고 빠른 적응이 가능했었습니다. 그 와중에 작은 해프닝이 있었는데요, 당시 아이들은 등하교를 버스로 했었는데 제가 매일 등하교를 같이하다가 괜찮다 싶어서 애들끼리 보냈습니다.

그런데 출근시간이라 버스가 승객이 많아서 아들이 밀려서 내리지 못했습니다, 딸이 울면서 동생을 잃어버렸다고 전화 왔더군요. 당시 아들은 핸드폰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말을 아예 모를 때라 제가 정말 당황해서 갈팡질팡하며 신고를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일단 저는 친척분과 버스길을 훑었습니다. 결국은 경찰 분께서 빠른 시간 내에 애를 찾아서 데려다 주셨습니다. 당시 아들의 말에 의하면 어떤 착한 아줌마가 손잡고 버스기사한테 자기를 맡기고 다독여주시고 가셨다고 합니다. 순간 제가 한국의 자본주의 친절이라고 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습니다.

저 역시 한국생활적응단계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다문화가족사랑회 회장님께서 저의 고민을 경청해주시고 방황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시며 많은 조언과 실질적인 지원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비리스타자격증도 따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은 도움을 받고 한국인의 따뜻함과 정을 느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한국생활에 완전적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매일 매일의 피곤함에도 감사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받은 것만큼은 안 되겠지만 도움을 청하는 이들에게 돌려주려고 가끔 봉사도 합니다. 저의 적응기가 아이를 데리고 낯선 땅에서 살고 있는 엄마에게 용기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