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고택] 조선 후기 안동권씨 집안 전통 간직한 ‘유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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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고택] 조선 후기 안동권씨 집안 전통 간직한 ‘유회당’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0.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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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전경
유회당 전경

대전 중구 무수동에 위치한 유회당(有懷堂)과 기궁재(寄窮齋)는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권이진(權以鎭, 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을 지닌 ‘유회(有懷)’는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재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이다.

유회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건물로 활수담(活水潭)이라는 작은 연못 뒤쪽에 있다. 앞면과 양쪽 면에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제사를 지내는 재실인 기궁재는 ㄱ자형 건물로서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건넌방·부엌 등이 있으며, 1920년대에 다시 지었다. 이곳에는 유회당 권이진이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시묘소인 삼근정사(三近精舍)와 선생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藏板閣)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안동 권씨 유회당 종가
안동 권씨 유회당 종가

유회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가 자리 잡고 있다. 권이진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던 종가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은 것이다.

이 가옥은 보문산 남쪽을 배경으로 하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벗하여 생활하는 청결하고 참된 선비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활철학이 담겨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규모를 작게 하고, 건물간의 사이공간을 여유롭게 배치한 유회당 종가는 낮은 잡석기단 위에 구성한 아담한 ㄱ자형 안채, 사당, 마을 공동체의 구심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여지는 모정, 그리고 자연공간과 어울린 정원 등이 다양한 공간구성을 보여준다.

여경암
여경암

인근에는 또 권이진 선생이 교육장소로 쓰기 위하여 1715년(숙종 41년)에 지은 여경암(餘慶庵)도 남아있다. 여경암을 중심으로 앞쪽에 서당 건물로 사용했던 거업재(居業齋), 뒤쪽에 산신당(山神堂)이 자리 잡고 있다.

여경암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사마온공이 자제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강당인 ‘여경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인데, 좌우 뒤쪽으로 2칸씩 덧붙여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거업재는 앞면 6칸·옆면 1칸 규모로,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오른쪽 2칸은 마루를 꾸며 여름철 서당으로, 가운데 2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겨울철 서당으로 사용 하였으며 나머지 2칸은 부엌 이다.

산신당은 고종 19년(1882)에 지은 건물로, 앞면·옆면이 1칸 규모이다. 단촐 하게 지은 건물로 안쪽에는 불단을 만들어 산신 탱화를 걸어 놓았다. <도움 : 대전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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