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8. 태안반도에 굴포운하를 추진한 고려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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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8. 태안반도에 굴포운하를 추진한 고려 인종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0.23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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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태안 굴포운하의 흔적
태안 굴포운하의 흔적

운하란 땅을 파서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물길이다.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크고 작은 운하를 파서 강과 바다를 연결해 배가 다니는 길을 만들었다.

충남 태안반도에 있는 ‘굴포운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운하를 건설한 유적이다. 태안반도는 서해 쪽으로 튀어나온 좁고 긴 지역으로, 굴포운하는 태안반도의 잘록한 부분을 뚫어 천수만과 가로림만을 연결하려고 했다. 여기서 굴포(堀浦)란 배로 실어 나르기 위하여 판 도랑이라는 뜻으로, 사람이 일부러 판 강이나 시내를 말한다.

태안반도 굴포운하 위치
태안반도 굴포운하 위치

고려가 세워지고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지역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도읍인 개경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 지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넓고 기름진 곡창지대로, 이곳에서 생산된 식량은 나라의 살림을 꾸리는 데 꼭 필요했다.

도로와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 무거운 곡식을 운반하기 위해서는 배로 이동하는 방법이 편리했다. 하지만 물살이 거센 여울을 통과하는 것이 문제였다. 여울을 지나다가 많은 배들이 부서지거나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태안해역에서 발굴된 달리도선
태안해역에서 발굴된 달리도선

서해를 지나 개경으로 가는 길에는 태안반도의 안흥량이 가장 험난한 여울이었다. 안흥량 일대는 바닷속에 숨은 바위가 많다. 또 섬과 섬 사이, 섬과 육지 사이가 좁아 바닷물의 흐름이 거세다. 당연히 물살을 이기지 못한 배들이 방향을 잃고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거나 침몰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실제로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배가 침몰했다는 기록이 많다. 요즘도 바다 밑에서 난파된 배가 발견되어 ‘난파선의 무덤’이라 불린다. 난파선에서는 고려청자를 비롯해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태안해역에서 발굴된 참외모양 청자 주전자
태안해역에서 발굴된 참외모양 청자 주전자

상황이 이렇자 고려 17대 왕 인종은 1134년에 안흥량을 무사히 지나기 위해 굴포운하를 만들라고 명령했다. 수천 명을 동원해서 전체 7킬로미터 가운데 4킬로미터 정도를 뚫었지만, 단단한 바위와 밀물과 썰물에 막혀 실패했다.

이후 공양왕과 조선시대 왕들도 운하 건설을 시도했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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