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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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부의 마음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19.10.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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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행정고시, 구청장, 국회의원, 공기관 임원, 교수까지, 평생 변화무쌍한 삶을 개척해온 그는 2019년 3월 13일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통해 동대전농협 조합장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생의 결실을 거두고 다시 흙으로 돌아온 그. 그러나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다른 열매를 위한 새로운 싹도 틔웠다. 초보 농군의 길에 들어선 임영호 조합장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일기장을 들춰본다.

 

우리 농협 조합원 중 벼농사 짓는 분들은 70여 호 된다. 많아야 열 마지기 이지만 워낙 쌀 소비가 적어 그것마저도 농협 자체의 수매에 응한다.

얼마 전 두 번의 가을 태풍은 바람세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알곡이 커진 익은 벼는 바람의 괴롭힘을 버티지 못하고 논바닥에 쓰러졌다. 요즘은 쌀의 질로 승부한다. 이런 벼는 당연히 수매를 거부당한다. 그럼에도 많은 농부들은 자연의 섭리에 순종하고 오히려 자기 탓으로 생각한다.

우리 시골집엔 언제부턴가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밀레(1814~1875)의 《만종》을 복사한 것을 액자에 끼워 넣은 것이다. 저녁 무렵 성당의 종소리가 울릴 때,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이 거룩하다. 인상파 화가로 말년에 권총으로 자살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생전에 밀레의 그림을 참 좋아했다.

그는 화가로써 첫발을 디딜 때부터 인생 마지막까지 밀레의 그림이 자기 삶을 떠나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밀레의 그림을 대하는 순간 강렬하게 밀려오는 그의 거룩한 숨결이 온몸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불현듯 그 거룩한 성전에 구두를 신고 들어온 것이 죄를 짓는 듯해서 급히 옷매무시를 고쳤다.”

고흐가 화가가 된 동기도 밀레처럼 아름답고 거룩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지 않나 생각이 든다.

고흐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란색으로 농부의 이 모습 저 모습을 그렸다. 고흐의 《낮잠》이란 그림이다. 고된 일을 마치고 황금색의 푹신한 건초더미를 침대 삼아 농부 부부가 한숨 늘어지게 자고 있다. 낫도 치우고 아예 신발까지 벗어던지고 밀짚모자를 푹 뒤집어쓴 채로 잠들어 있다. 부인도 그 옆에서 곤하게 잠을 잔다. 밀레의 작품에서 감동받아 자기식대로 그린 것이다.

대청호 주변 동네에서 형님처럼 지내는 통장님을 만났다. “엎친 벼도 수매하느냐?” “받을 수 없는데요.” 나는 힘없이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돌아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그랬다.

농심은 단출함이다. 제일 먼저 거추장스러운 욕심을 거두어낸다. 농부들은 삶을 최적화시키며 살아간다. 만족을 모르며 헛것을 갈망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오는 차 안에서 정부에서 쓰러진 벼를 별도로 수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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