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10. 최영, 부여 홍산에서 왜구를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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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10. 최영, 부여 홍산에서 왜구를 물리치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0.2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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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경로

고려 말기인 13~14세기는 일본 해적인 왜구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고려시대 역사책 《고려사》에는 1223년부터 고려가 멸망하는 1392년까지 169년 동안 왜구가 무려 500번 넘게 침입했다고 기록되었다.

왜구는 적게는 20척에서 많을 때는 500척이 넘는 배를 이끌고 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았다. 왜구는 주로 일본과 가깝고 바다를 통해 접근하기 쉬운 경상도·전라도 지방과 금강 물길을 따라 육지 깊은 곳까지 들어올 수 있는 충청남도 지역을 자주 공격했다.

1376년 여름에 홍수로 불어난 금강 물길을 따라 올라온 왜구가 부여와 공주를 차지하고, 논산으로 쳐들어가 개태사를 약탈했다. 이 소식을 들은 최영 장군은 우왕에게 왜구를 물리칠 것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최영 장군 영정
최영 장군 영정

최영 장군은 당시 60세로 나이가 많았지만 최공철, 강영, 박수년 등 부하 장수들과 함께 부여 홍산에 머물던 왜구를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뒀다. 이후 왜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는 백발의 최 만호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최영 장군을 두려워했다.

홍산 대첩에서 최영 장군에게 진 뒤 잠잠하던 왜구는 1380년 8월, 다시 500척에 이르는 배를 이끌고 금강 하구인 진포를 침략했다. 왜구는 배를 밧줄로 묶어 놓고 육지로 올라가 약탈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왕실은 화약 무기를 실은 배 100척을 보냈다.

그 무렵 최무선 장군이 새로운 무기인 화약을 이용하여 화살과 총, 대포를 발명했다. 최무선과 나세 장군이 이끄는 고려의 배는 강력한 화약 무기를 사용해 5배나 많은 왜구의 배를 모조리 부서뜨렸다. 뒷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장군은 배를 잃고 육지 깊숙한 곳으로 달아나던 왜구를 전라도 황산에서 무찔렀다.

충남 부여 홍산대첩문화제
충남 부여 홍산대첩문화제

홍산대첩, 진포대첩, 황산대첩, 관음포대첩은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른 대표적인 전투다. 이 가운데 두 차례 전투가 충남 지역에서 일어났다. 지금도 부여군 홍산면에서는 해마다 홍산대첩을 기념하는 축제인 홍산대첩문화제를 연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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