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엄마와 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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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엄마와 고추장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19.11.0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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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나 인생 최고의 요리사를 꼽으라면 대부분 망설임 없이 자신들의 엄마를 말한다. 비록 동네에서 음식솜씨 품평이 부족하다는 엄마일지언정 어느 누구의 입맛이고 자식들에겐 엄마의 손맛보다도 뛰어나고 맛난 음식은 없다.

이는 모두가 엄마의 입맛에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정성과 혼신이 담긴 음식으로 생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특히 한국의 음식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엄마의 정성과 자식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모정이 더해져서인지 엄마표 음식은 추억뿐 아니라 가히 어느 누구에게나 눈물겹고 아련한 감동이 서려있기 마련이다.

그리하여서인가 나에게도 특별한 음식을 들라면 망설임 없이 엄마의 솜씨와 어릴 적부터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도록 먹어온 고추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족은 된장보다 고추장을 더욱 선호하는 가풍인지 된장국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동생들도 고추장 없이는 밥 한술을 뜰 수가 없었다.

발효음식인 고추장은 다른 음식에 비하여 많은 시일이 요구될 뿐 아니라 모든 한국 음식의 기본이 된다고 하겠다.

고추장을 담그는 일은 품이 많이 가고, 하루 이틀에 손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만드는 과정도 꽤 여러 날이 걸릴 뿐 아니라,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고추를 말리고 곱게 빻아 고춧가루와 된장을 알맞게 배합하여 첨가하고 버무려서 일정기간을 숙성시키고 발효시키는 데는 상당한 손이 가고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든다. 또한 고추장처럼 단맛, 쓴맛, 매운맛이 다 담겨 있는 음식은 이 지상에 없다고 감히 말하겠다.

한국 음식 중에 가장 보편적인 것은 나물무침인데 그 기본도 역시 고추장이다. 나물과 밥을 비벼먹는 비빔밥도 고추장이 맛나야 그 진미가 더욱 살아나듯 모든 반찬의 왕도가 고추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찬거리가 없으며 입맛을 잃었을 때도 쉰 열무김치 몇 조각에 고소한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던 어느 여름날의 그 열무비빔밥 맛은 생각만 하여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이제 엄마도 연로해지시고 더 나이가 드시어 노쇠해지시면 해마다 몇 단지나 담아 이웃이나 친지들에게 마구 퍼주시던 고추장 보시도 줄어들기 마련일 테니, 올해는 큰맘 먹고 제대로 엄마의 고추장 담그는 비법을 전수받아야겠다.

세상에 많은 음식이 있고 음식의 가짓수도 수백 수천가지 이겠지만, 이처럼 고추장 예찬은 마르고 닳도록 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거듭하여 나에게 무엇보다 엄마표 고추장보다 맛난 음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엄마를 영원히 잊지를 못하듯이 밥상에서 고추장이 없이 밥을 먹을 수는 없음이다.

무더위에 지쳐서 입맛을 잃은 올해 여름도 찬밥을 물에 말아 풋고추를 엄마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그 감칠맛 나고 매콤한 고추장 맛으로 여름 한철을 견뎌 내었고 삶의 허기를 채우곤 했다.

장기간 외국을 나설 때도 엄마표 고추장 맛에는 못 미치지만 치약처럼 튜브로 된 고추장이나 항공사에서 가끔 덤으로 주는 비빔밥용 고추장이 없이 떠나는 외국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미각을 잃는 일이기에 맨 먼저 공항에 도착하여 하는 일이 양치도구를 챙기는 것처럼 고추장 챙기는 일이 여행보다 우선 과제였다.

이처럼 고추장은 나의 일상에서 기호식품이기 전에 물이나 산소처럼 내 생명을 지탱하는 귀중한 에너지가 틀림없다. 고추장처럼 단맛, 쓴맛, 매운맛이 인생이라면 험난한 인생의 노정에서 고추장 맛이야말로 인생의 맛일 뿐 아니라 엄마가 주신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점심에 땀을 뻘뻘 흘리며 비벼 먹은 매운 고추장 맛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듯 나에게 고추장이 없는 밥상은 생각하기 조차 싫다.

오늘 아침 고향에 계신 엄마와 통화 중에 집 옥상에 고이 담가둔 삼년 묵은 감칠맛 나던 고추장 항아리가 어느덧 다 비어간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괴산 청결고추를 빻아 새로 담그신다는 고추장은 보은 대추를 첨가한 약선 고추장이라고 하시니 그 맛이 벌써 부터 잔뜩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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