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히스토리] 10만 년 전 그들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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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히스토리] 10만 년 전 그들이 살았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1.0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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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옛 이름은 한밭으로 ‘큰 밭’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대전이라는 이름은 동국여지승람(1487)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지만, 지금의 대전 영역은 조선시대 회덕현, 진잠현, 그리고 공주목 유성지역이 합쳐져서 된 것입니다. 선사 이래 많은 유적과 유물이 쏟아질 만큼 풍요로운 땅이자 저명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선비의 고장으로, 현재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요람이자 19개 대학 14만 명의 젊은 인재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대전 히스토리’ 시리즈를 통해 대전의 역사와 인물들을 되돌아보고 150만 시민들이 지역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갖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10만 년 전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용호동 구석기 유적

대전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으로, 그 가운데를 갑천·유등천·대전천이 흐르고 있다. 이들 하천이 모여 금강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비옥한 땅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대전지역에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이 형성되었고 농경이 발달하였다. 대전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중기 구석기시대부터로 알려졌다.

대전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용산동, 둔산동, 노은동, 구즉동, 용호동, 대정동 등에서 조사됐다. 유적의 상태가 가장 좋은 용호동유적에서는 약 3000여 점의 석기가 확인됐는데, 유물이 야 외에 흩어져 있었고 유적의 성격은 뚜렷하지 않다. 다만 화덕이 발견된 것을 보면 일시적으로 거주하며 강가에서 고기를 잡고 주변 야산에서 짐승을 사냥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용호동유적 중 자갈돌로 만든 찍개들은 약 10만 년 전의 중기 구석기시대 유물로 밝혀졌다. 이로써 대전지역에서는 적어도 1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간석기와 갈판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구석기시대 주민들이 돌을 갈아 쓰는 기술을 이미 알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둔산동 신석기 유적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진흙을 빚어 불에 구운 빗살무늬토기에 요리를 해 먹거나 식량을 저장했다. 그들은 움집에서 생활했고,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를 사용해 농사를 지었다.

대전지역의 둔산동유적은 기원전 3000~2500년경인 신석기시대 중기에 사람들이 살았던 유적이다.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부분 빗살무늬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도 줄무늬, 격자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있긴 하지만, 토기 바닥은 예외 없이 모두 둥근 모양이다.

집터가 매우 작고, 화덕이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오랫동안 머물러 살았다기보다는 계절에 따라 이동 생활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거주한 주거지로 보인다. 또한 빗살무늬토기 외에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보습은 이곳 주민들이 농사짓는 방법을 알고 있었음을, 어망추는 고기잡이가 활발했음을 말해준다. <도움 : 대전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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