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4년… ‘빨리빨리’ 도사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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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한국생활 4년… ‘빨리빨리’ 도사가 됐어요”
  • 무이(베트남)
  • 승인 2019.11.08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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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22)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혼인 비중은 8.3%에 달하고 있으며, 다문화 출생의 비중도 5.2%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문화 인구 역시 이미 100만 명을 넘어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적응에 대한 일방적 강요보다는 상호 동반자적인 관계가 절실해진 이유입니다.

이에 밥상뉴스에서는 대전시 비영리자원봉사단체인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 시리즈를 마련하고, 그들의 삶과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기고자의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해 사진은 게재하지 않으니 이해를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베트남에서 한국에 온지 4년 된 무이라고 합니다. 베트남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생명의학 분야의 연구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한국에 왔고,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지금은 생명공학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한류 열풍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 대장금, 풀하우스 등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에 대한 로맨틱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온 날 저는 첫눈에 한국의 모든 것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잘 생긴 남자들, 아름다운 여자들, 김치, 삼겹살 등 한국음식들, 깨끗한 도로, 편리한 교통,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제가 한국에 올 때는 가을이었는데 높고 푸른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여 울긋불긋한 경치도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문명화되고 현대적이며 외국인에 대해 우호적인 나라 한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좋은 친구들, 선생님들도 만나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적이고 좋은 기억이 남는 경험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결혼을 한 대학원생으로서 저는 시험뿐만 아니라 교수님들과 함께 하는 연구 프로젝트들로 매우 바빴지만 광범위한 연구 장비로 많은 것을 연습하고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우 전문적이고 매우 빠른 한국인의 작업속도에 압도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의 일부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빨리빨리”였고, 정말로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야 했습니다.

시대의 지도자인 양반들은 비가와도 뛰지 않고 유유자적 천천히 걸으며 비오는 날의 낭만을 즐겼다고 하는데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빨리빨리’ 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한국이 ‘빨리빨리 잘하자’라는 말처럼 다른 나라들보다 더 빨리 발전하였고 IT강국으로서 인터넷 속도도 세계 1위가 되었나 봅니다. 이제는 저도 빨리빨리에 익숙해져서 많은 일들을 빨리빨리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일에 너무 열정적이고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에 집중합니다. 한국의 학생들, 심지어 교수님들까지도 밤늦게 때로는 새벽 1~2시 심지어 아침까지 공부하고 일을 합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근면과 집중력을 배우다보니 저도 석사 학위를 마치고 좋은 직장을 얻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에게는 따뜻함과 배려, 나눔이 함께 하는 독특한 정문화가 있습니다. 정과 관련된 표현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일 정도로 서로에게 정을 베푸는 것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일상적인 생활 방식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한국의 정 문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석사 과정 말미에 저는 아이를 낳았고, 남편은 박사 과정 중 이어서 다른 가족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제가 석사학위를 마칠 수 있도록 아기를 돌보기 위해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처음 외출에 어머니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어머니는 3개월 동안 한국에서 병원에 계셔야 했고 세 번의 수술을 받으셨고 합병증까지 앓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공부를 잠시 중단 했지만 우리 딸을 봐서 계속 병원에 머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항상 어머니 곁에서 간호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분 다 한국어를 못 하셨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두 분은 바디 랭귀지로 말을 하셨고 의사 선생님, 간호사들은 사려 깊고 따뜻한 관심으로 바디 랭귀지로 하는 표현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주셔서 많은 어려움에도 어머니가 치료를 잘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같은 방에 있는 환자들도 친절한 관심을 보이고 음식 하나라도 나누어 주려는 따뜻한 정을 주셨습니다.

저의 가족은 지금도 한국어를 못하는 저의 부모님을 배려해 주시고 도움주시고 사랑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은 외국인과 한국인 차별하지 않고 저렴하게 좋은 의료 혜택을 볼 수 있게 해 주어서 저의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 저의 어머니 건강은 나아지셨고 분명히 고통스런 시간이었지만 한국인들의 따뜻한 정 때문에 따뜻한 고통이었다고 추억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따뜻한 정이 있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습니다. 틀림없이 배우고 경험할 많은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저의 바람을 다문화가족사랑회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한국어 선생님을 저의 집으로 보내 주시어 무료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더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친정한 가정방문을 해주시는 선생님으로 인해 또 한 번의 깊은 감동과 감사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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