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인생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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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인생음식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19.11.13 1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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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나 살아가며 잊을 수 없는 ‘인생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묻는다면 칼국수와 김밥이다. 가족 내력인지 동생도 밀가루 음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제는 당뇨가 심해져서 되도록 멀리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끔은 칼국수뿐 아니라 궂은날 남은 찬밥 한 덩이에 시큼한 묵은 김치를 넣고 팔팔 끓인 뒤 수제비를 조금 떠넣어 동생들과 양은 상에서 먹던 그 수제비 김칫국이며, 헐벗은 지난날의 기막힌 식감을 또 어찌 잊으랴.

어두움이 스멀스멀 내리던 해 저문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엄마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적당히 혼합하여 반죽을 만들고 문대어 하얀 보름달을 만드시고, 꽉 찬 달이 되면 외할머니께서는 어머니가 만든 하얀 둥근 달의 얇아진 반죽을 차곡차곡 접어 부엌칼로 날렵하게 잘근잘근 썰어서 국숫발들을 채반에 가지런히 널고, 아버지는 텃밭에서 따오신 애호박과 풋고추를 그 국숫발들과 가마솥에 끓여 식구들에게 푸짐히도 퍼준다.

우리는 모깃불을 핀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국수에 양념간장을 넣고 날도 무더운데 뜨끈한 국수를 먹으며 어른들이 “어~ 시원하다” 하시는 뜻을 헤아리지 못하며 배를 불렸다. 이제는 조각달만 보아도 가끔은 엄마가 홍두깨로 조각달을 둥글게 보름달로 늘리는 국수가 생각난다.

이 세상에 온 것을 시인 천상병은 하늘에서 소풍을 온 것이라고 했으며 저승을 갈 때에도 여비가 든다고도 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이른 아침에 정성껏 맛나게 싸준 김밥에 용돈을 두둑하게 타고 들뜬 마음으로 가는 소풍 길 같은 것이 인생이라는 말씀인가?

그러나 그 설레는 소풍날도 하필이면 소낙비도 만나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보물찾기 쪽지를 찾아서 공책이며 학용품을 상품으로 타고 으쓱해 할 때 보물도 못 찾고, 오던 길에 소똥을 밟은 가끔은 그러한 재수 없는 날이 간혹 있나니.

산다는 것도 그렇게 마냥 들뜨고 신나는 소풍날이 갑작스레 우울모드로 전환되어질 때,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소풍길 그만 가고 싶을 때 여러 번 있었지만, 설레었던 소풍길도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인생이든 소풍이든 산다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한다.

인생 후반전에 이르고 보니 갈 사람은 다들 가고, 아직 좀 더 머물 나이도 가고, 머물 만큼 한참을 더 머물던 이도 어느 날 갑작스레 떠나가고, 쉬엄쉬엄하며 술도 한잔하고 담배도 피고 그렇게 쉬면서 가던 여유로운 사람이 급작스럽게 떠나가고, 숨차게 세상을 살아가며 바삐 살은 사람도 어느 날 홀연히 가고.

죽으면 제일 서운해서 ‘어쩔거나~’ 하던 특히나 인물 좋은 여자, 밤이면 행복에 겨워 제 돈 밤을 지새우며 세던 낙으로 돈에 깔려 죽을 만큼 재물이 많은 사내도, 방귀깨나 뀌며 목청 높이던 권세 자랑하던 건방진 이도 어느 날 ‘픽~’ 하고 허무하게 가는 게 이 세상이더라는 말씀이다.

세상에 숨 쉬는 모든 생명들 사는 만큼 한바탕 소리들을 힘차게 내질렀겠지만, 어느 날은 다 사는 게 허망스러워 옳게 하는 짓도 이게 다 저승사자가 시키는 짓 같기도 하겠지.

이유 모를 불안에 촛불처럼 흔들리기도 하며, 열 사람의 위안보다도 어쩌면 이슬처럼 맑은 소주 한 병이 더 그리울 때가 있는 상처 많은 고독한 시간에 그래도 손을 모아주고 가는 따듯한 기도도 있었기에, 포근히 감싸주는 따사로운 이도 있었기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렇게들 살아가는 것이지.

무정한 사람, 이제는 아무런 소식이 없어도 괜찮다. 이미 나에겐 많은 사람들이 소식처럼 지나갔으니, 정성스레 마음에 쓴 편지들을 펼쳐 보여주고 갔으니, 무소식이야말로 마냥 좋은 소식이고, 무심한 세월도 호시절이 아닐까 한다.

이른 아침 홀로 깊이 천착하며 한 편의 인생 회고록을 쓰기 위해 산문시를 쓰고 수필을 쓰는 나 자신을 위해서 풀잎은 깨우던 바람에 몸을 치켜세우지 않아도 버림받았다 하지 않듯이, 십리 길을 걸어서 걸어서 용곡 저수지의 홍사당 푸른 솔밭에 닿아서야 아픈 발품으로 느끼던 초등학교 때의 그 소풍이 이제는 이 세상 사는 하루하루가 매일 소풍 같기도 하다.

다들 가더라고 갈 사람도 가고, 가지 않아도 될 사람도 가고, 갔으면 하는 놈도 언젠가 갈 테고, 이 세상 소풍 끝나 하늘로 간다 하더라만, 그것 또한 세상의 아름다운 일 중의 하나라 하더라만.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어느 날 일이 안 풀리고 세상의 오지로 몸을 숨기고 싶어 떠난 먼지 폴폴 날리던 여행길에서 손을 흔들어 주며 부끄러워하며 그 해맑은 눈웃음이, 그 때묻지 않은 라오스의 시골길이 우리가 살던 70년대와 80년대였듯, 내 인생도 현재 소풍 중이고 새참으로 먹었던 퉁퉁 불은 칼국수든, 설레인 소풍날 엄마가 싸준 김밥이든, 내 인생에 한 컷의 소중한 음식은 분명하다.

날이 궂으면 국수를 먹고, 바쁜 일이 많아 제대로 된 식사의 여유가 없을 땐 김밥 한 줄로 한끼를 해결하니 내 ‘인생음식’은 국수와 김밥이라고 언급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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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 2019-11-13 11:27:24
어릴적 밀가루빈죽해 홍두께로 미시던 어머님 모습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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