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14. 세종대왕, 온양에 온궁을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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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14. 세종대왕, 온양에 온궁을 짓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1.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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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세종대왕 어진

세종은 1418년 조선의 네 번째 왕에 올랐다. 세종은 1450년까지 32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한글을 만들고, 과학 기술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조선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등 큰 업적을 세웠다. 그래서 다른 왕과 비교해 ‘대왕’이라고 높여 부른다.

세종대왕은 쉼 없이 공부하고, 많은 일을 하는 바람에 건강이 나빠져 고생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질병에 시달린 세종대왕은 치료를 위해 온천에 자주 갔다. 전국의 많은 온천 중에서도 세종대왕이 사랑한 온천은 지금의 충남 아산시 온양동에 있는 온양온천이다.

온양 온궁 터에 남아 있는 영괴대
온양 온궁 터에 남아 있는 영괴대

삼국시대부터 이름난 온양온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한자로 따뜻할 온(溫), 볕 양(陽)자를 쓰는 ‘온양’이라는 이름도 온천에서 비롯되었다. 온천 목욕은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널리 쓰였다. 온양온천은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세조, 현종, 영조, 정조 등 조선시대 여러 왕과 왕족이 즐겨 찾았다.

세종대왕은 35세 때인 1432년에 풍질을 치료하기 위해 온양온천을 찾은 뒤, 두 차례 더 방문했다. 세종대왕은 온양 온천에 오면 보통 한 달 정도 머물렀다. 1441년에는 건강이 크게 좋아지자 온양온천이 있던 ‘온수현’을 ‘온양군’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왕이 행차할 때마다 고생한 온양의 백성을 위해 음식과 상금을 내리고, 세금을 줄이거나 거두지 않았다.

온양 온궁의 건물 배치
온양 온궁의 건물 배치

왕이 온천에서 쉬는 동안 나랏일을 보기 위한 임시 궁궐도 필요했다. 이렇게 임시로 만든 궁궐을 ‘행궁’이라 부르는데, 온천에 설치한 행궁은 ‘온궁’이라 불렀다. 온궁에는 다른 행궁에 없는 ‘탕실’이 있었다. 탕실은 목욕하는 곳이다. 온궁 중에는 세종대왕이 온양에 설치한 온양 온궁이 가장 유명하다.

온양 온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려진 것을 조선 18대 왕 현종이 다시 세웠다. 온양 온궁은 조선 말기까지 여러 왕이 쉬고 병을 치료하는 곳으로 이용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온양온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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