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18. 이몽학, 부여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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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18. 이몽학, 부여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9.12.0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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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부여 홍산 무량사
부여 홍산 무량사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은 1598년까지 7년 동안 이어졌다. 조선을 점령한 왜군이 자기 나라를 공격할 것을 염려한 명나라는 4만 명이 넘는 지원군을 보냈다.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이 왜군에게 빼앗긴 평양성을 되찾은 1593년 1월, 명나라와 일본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협상은 몇 년에 걸쳐 진행됐으며, 그동안 전쟁에 따른 피해에 가뭄과 전염병까지 겹치면서 백성들은 큰 고통에 시달렸다. 조선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이런 혼란 속에 홍산(충남 부여군 홍산면)에서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 조선을 뒤흔들었다. 반란의 주동자는 왕족의 서얼 출신 이몽학이다.

그는 무량사에서 승려들과 함께 깃발과 무기를 만들며 반란을 준비했고, 1596년 7월 6일 홍산현 관아를 습격하여 점령했다. 무능한 조선 왕조를 무너뜨리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되게 해 주겠다는 이몽학의 주장에 농민들이 함께하면서 반란군 세력이 커졌다.

홍주성 조양문
홍주성 조양문

이들은 며칠 만에 임천과 정산, 청양, 대흥을 연달아 차지했고, 충청도 내포의 중심 고을인 홍주성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7월 10일 홍주성을 공격한 반란군은 홍주 목사 홍가신과 임득의, 박명현, 신경행 장군이 이끄는 관군에 지고 만다.

주동자인 이몽학은 청양까지 도망갔지만,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몽학의 반란은 조선 왕실이 얼마나 민심을 잃었는지 보여 주는 큰 사건이었다.

홍주 목사 홍가신 영정
홍주 목사 홍가신 영정

한편, 충남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백월산 꼭대기에는 홍가신을 백월산의 산신령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산신당이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홍주 목사 홍가신은 전쟁과 질병,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백성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런 홍가신이 홍주를 떠나자 다시 전염병이 돌았고, 백성은 홍가신이 이몽학의 반란군을 물리쳤듯이 전염병을 가져온 귀신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백월산 꼭대기에 산신당을 지어 홍가신을 조각한 인물상을 모시고 정성껏 제사를 지내자 전염병이 거짓말처럼 없어졌다고 한다.

홍성 사람들은 지금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 무렵에 홍가신 사당에서 주민의 건강과 안녕,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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