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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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 정미자 (캄보디아)
  • 승인 2020.01.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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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34)

지난해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혼인 비중은 8.3%에 달하고 있으며, 다문화 출생의 비중도 5.2%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문화 인구 역시 이미 100만 명을 넘어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적응에 대한 일방적 강요보다는 상호 동반자적인 관계가 절실해진 이유입니다.

이에 밥상뉴스에서는 대전시 비영리자원봉사단체인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 시리즈를 마련하고, 그들의 삶과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기고자의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해 사진은 게재하지 않으니 이해를 바랍니다.

 

저는 캄보디아에서 온 정미자입니다. 제가 9살이 되던 해에 아빠가 결혼하셨어요. 새엄마는 가족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오셨어요. 우리 집은 가족이 많아졌습니다. 그로 인해 아빠는 쉬지도 않고 돈 버느라 바쁘고 힘드셨어요.

그런 아빠를 보며 저는 혼자 돈 벌어 학비도 내고 가정도 돕고 용돈도 내가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같이 살아도 혼자 사는 것 같았습니다. 일하면서 너무 힘들고 나중에는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엄마가 떠났고, 사랑했던 아빠와 새엄마의 결혼으로 내자리가 없어지며 아빠와 같이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앞길이 막혀 버린 것입니다. 저는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님 가족과 살았습니다. 그때 아빠와 떨어져 살면서 마음이 아프고, 보고싶었지만 아빠가 정말 불쌍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인생에 목표도 없고 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사모님은 저에게 “인생 포기 하지마, 꿈꾸는 자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항상 따뜻한 말과 사랑을 주셨어요.

그 후 한국 교회 목사님이 캄보디아에 오셔서 저에게 목사님 어머님 식당에서 일 도와주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제 월급이 한 달에 약 30만 원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돈도 벌고 한국에 가서 공부도 다시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03년에 아빠를 본 후 그 이후에 얼굴을 못 보고, 2005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한국식당에서 4년쯤 일하다가 광주교회에 있는 지금의 남편 누나와 형을 만났습니다. 누나는 저한테 “우리 동생과 결혼할래?”라고 말했는데 대답을 못 했습니다. 몇 달 후에 저는 지금의 남편과 대전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아버님, 형님, 영광식당 양부모님하고 인천 목사님도 같이 만났습니다. 둘이 만나면 떨리고 긴장 되었을 텐데 다 같이 만나서인지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남편 누나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만나면서 남편은 저에게 “우리 손잡고 오래오래 살자, 싸우지 말고 내가 잘해 줄게”라는 말에 그를 더욱더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광에서 대전으로 한 달 동안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권을 알아보니 한국비자가 없어서 결혼하면 불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6개월 후에 다시 만나서 저와 캄보디아를 여행하고 또 대사관에 가서 국제결혼 서류 준비를 했습니다. 1년 후에 대사관에서 비자 받아서 다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2013년 3월 31일 교회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예식장에서 하고 싶었지만 결혼식 비용이 없어 고민하자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하라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결혼식 날 친정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서 슬펐지만 교회 목사님과 많은 성도님들의 축복을 받으며 저는 행복해졌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2014년 우리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귀여운 아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고 힘들게 돈을 버는 남편이 무척 안쓰럽지만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 더 행복하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이제는 꿈이 생기고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어머님, 아버님 만났을 때 친정 부모님 생각하고 말도 잘 못하고 어려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아버님께서 항상 저와 제 아이를 따뜻하게 돌봐주시고, 용돈이나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데 돈이 없어 해드리지 못하고 농사일도 제대로 못 도와 드리고 실수만 하는데 매번 칭찬해주시고 저를 친딸처럼 보살펴주셨습니다.

2년 전에 캄보디아에서 온 조카와 막내 사촌이 결혼해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한 가족처럼 대해주시고 예뻐해 주시는 우리 시부모님을 보면서 저는 가끔 “어머님, 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저는 외롭고 슬픈 사람이었어요. 그런 저는 남편을 만났고 위로해주고 다독거리고 안아주는 남편이 있어서 참 행복 하다는 걸 느낍니다. 회사 쉬는 날에는 가족과 함께 놀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당신이 멋있고 고맙습니다. 우리 진수와 나를 위해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당신을 보며 결혼 잘 했구나 생각했어요. 나의 꿈은 우리 진수와 당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 저는 혼자였습니다. 그때 한국말과 한국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는데 결혼 후에는 남편이 어디를 가든 대신해 주었고, 다문화가족 사랑회를 알게 되면서 이곳에서 요리도 배우고 한글도 배우고 있으며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빨리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 문화를 잘 익히고 적응 할 수 있게 배우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혼자 병원에도 가고 회사 사장님과도 전화 통화 할 수 있을 만큼 한국어가 늘었습니다.

모국에서는 꿈이 없던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은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남편과 우리 가족의 건강, 하는 일 모두들 잘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아름다운 생활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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