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22. 오일장을 주름잡던 내포의 보부상
상태바
[인물로 본 충남역사] 22. 오일장을 주름잡던 내포의 보부상
  • 이호영 기자
  • 승인 2020.01.03 17: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예덕 상무사 보부상 유품 전시관
예덕 상무사 보부상 유품 전시관

보부상은 조선시대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장사꾼이다. 그래서 장돌뱅이, 장돌림, 도붓장수, 봇짐장수, 장꾼 등으로 불렸다. 머리에 솜이 달린 패랭이를 쓰고, 손에 긴 작대기를 들고서 봇짐이나 등짐을 이거나 짊어지고 시골 장터에 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보부상은 봇짐장수인 ‘보상’과 등짐장수인 ‘부상’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보상과 부상은 파는 물건이 달랐다. 보상은 금·은·동으로 만든 장신구나 화장품, 종이와 붓, 먹, 벼루처럼 작고 가벼우면서도 값나가는 물건을 팔았다. 부상은 무쇠로 만든 솥과 농기구, 항아리, 질그릇, 대나무로 만든 물건처럼 크고 무거운 물건을 팔았다. 이런 물건 중에서 일부는 보부상만 팔 수 있도록 나라에서 특별한 권리를 주었다.

보부상이 이런 특권을 누린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이성계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보부상의 우두머리 백달원이 800명이 넘는 부상을 거느리고 와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뒷날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부상의 공로를 인정하여 어 물과 소금, 토기, 무쇠나 나무로 만든 물건 등을 부상만 팔 수 있도록 정했다고 한다.

보부상은 지방의 오일장을 무대로 성장해, 조선 후기에는 시장을 감독하고 세금을 걷는 권한까지 받았다. 이들은 정부의 보호 아래 튼튼한 조직을 만들었다. 보부상 조직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는데, ‘상무사’가 가장 유명하다. 1904년 없어지기까지 상무사가 보부상을 대표하는 마지막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충남지역에도 고을마다 보부상 조직이 만들어졌다. 고을 하나에 조직 하나가 있던 다른 지역과 달리, 충청남도에서는 몇 고을이 합쳐 큰 조직을 만들었다. 예산·덕산·면천·당진이 합친 ‘예덕 상무사’, 홍주·광천·보령·결성·청양·대흥이 합친 ‘원홍주 육군 상무사’, 한산·서천·부여·임천·홍산·정산·비인·남포가 합친 ‘저산 팔읍 상무사’가 대표적이다.

규모가 큰 조직을 만든 충청남도 지역의 보부상은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현재 충청남도에는 정부에서 보부상 조직을 인정한 문서와 임원들이 사용한 각종 도장과 이를 보관한 상자, 보부상을 상징하는 패랭이와 청사초롱, 깃발 등 전해지는 물건이 많다.

예덕 상무사에 전하는 문서를 보면 조직을 만든 이유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병든 동료를 보살피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등 서로 돕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부도덕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보부상을 벌주기 위해서였다.

유교 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직업에 따라 선비, 농민, 공장, 상인 순서로 신분을 차별했다. 제일 낮은 위치에 있는 상인은 그만큼 살기 어려웠고, 상인 중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보부상은 집이나 가족 없이 떠돌다가 죽거나 병들어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보부상은 서로 돕고 의지했다. 예덕 상무사에 전해 오는 14개 벌칙을 보면 동료와 조직을 소중하게 여긴 보부상의 태도를 잘 알 수 있다.

예덕 상무사의 14개 벌칙

1. 부모에게 불효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없는 사람은 볼기 50대를 친다.
2. 우두머리를 속이는 사람은 볼기 40대를 친다.
3. 시장에서 물건을 억지로 파는 사람은 볼기 30대를 친다.
4. 동료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볼기 30대를 친다.
5. 술주정하면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볼기 20대를 친다.
6. 불의를 저지른 사람은 볼기 30대를 친다.
7. 언어가 공손하지 못한 사람은 볼기 30대를 친다.
8. 어른을 능멸한 사람은 볼기 25대를 친다.
9. 질병에 걸린 동료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볼기 25대를 치고, 벌금을 내게 한다.
10. 노름 같은 잡다한 놀이를 한 사람은 볼기 30대를 치고, 벌금을 내게 한다.
11. 문상하지 않는 사람은 볼기 15대를 치고, 벌금을 내게 한다.
12.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볼기 10대를 치고, 벌금을 내게 한다.
13. 부고를 받고도 가지 않는 사람은 볼기 10대를 치고, 부조 낼 돈의 배를 벌금으로 내게 한다.
14. 모임에서 빈정대며 웃거나 잡담하는 사람은 볼기 15대를 친다.

<도움 :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대전의 고택
힘내라! 중소기업
인물로 본 충남역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