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충남역사] 24. 청일전쟁 싸움터가 된 천안·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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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본 충남역사] 24. 청일전쟁 싸움터가 된 천안·아산
  • 이호영 기자
  • 승인 2020.0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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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은 산·강·평야가 조화롭게 발달하고, 서해의 풍부한 물산과 편리한 교통으로 예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충남의 인물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온몸으로 일어서는 충절의 정신을 보여줬습니다. 이에 밥상뉴스는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역사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충남이 지닌 유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자긍심과 지역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중국 청나라와 일본은 서양 강대국에 비해 자기들이 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양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여서 힘을 기르고자 했다. 일본이 먼저 변신에 성공했고, 중국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일본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서양처럼 많은 공장을 세운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기들이 생산한 물건을 팔고자 했다. 1876년에 일본이 강화도를 공격해서 강화도 조약을 맺은 것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때 조선은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내 온 청나라에 기대 일본의 침략을 막고자 했다. 1894년 동학 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동학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군대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를 핑계로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보내면서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을 사이에 두고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을 ‘청일전쟁’이라 부른다.

청일전쟁은 1894년 7월 25일 태안 앞바다에서 일본 해군이 아산만으로 들어오는 청나라 군함을 갑자기 공격하며 시작되었다. ‘풍도해전’이라 불리는 이 전투로 청나라군은 큰 피해를 당했다. 반대로 사기가 오른 일본군은 7월 29일 천안 성환에 주둔하던 청나라의 주력 부대를 공격했다.

두 나라 군사 3000여 명이 참여한 성환전투에서 청나라군은 4시간 만에 성환을 빼앗기고 아산 일대로 후퇴했다가 다시 평양으로 물러났다. 청일전쟁의 싸움터가 된 천안과 아산 일대는 두 나라의 전투로 피해가 컸다.

청나라와 일본은 평양에서 전투를 치렀고, 이번에도 일본군이 승리했다. 1895년 3월까지 계속된 청일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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