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옥수수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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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옥수수와 인생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0.06.22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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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가 제법 컸습니다. 이웃이 안 보일 정도로 몰라보게 자랐습니다. 처음 심을 때 두 알씩 30센티미터씩 띄워서 욕심부려 심었습니다. 막상 자란 것을 보니 비좁게 서 있는 느낌입니다. 어떤 것은 형제들과 경쟁에 치여서 성장이 더딘 모습입니다. ‘미안하고 내가 바보였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키울 때와 비슷합니다. 지나치게 기대하고 압력 주고 간섭하면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첫아이에게 자신의 꿈을 심습니다. 아마 아이는 마음의 평안을 갖지 못할 것이고, 인생 자체에 비관적일 것입니다.

마음 비우고 마음 편하도록 애정 어린 대화, 따뜻함 같은 것을 준다면 삶이 더 가볍고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삶은 경쟁 속이지만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살 가치를 느끼도록 자기 식대로, 자기 언어로,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진정한 고독과 자유를 줘야 합니다.

내년에는 하나씩 띄우고, 지금보다 10센티미터 더 간격을 유지하고, 키가 무릎까지 올라올 때 복합비료 한번 주면 신나게 자랄 것 같습니다. 대신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열리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수확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신의 뜻으로 여기고 만족하면 됩니다.

얼마 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습니다. 주인공 소년 한스는 시골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컸습니다.

공부 잘하고 심성 착하고, 그래서 부모나 선생님의 조언 자체가 아이한테는 큰 부담이고 영혼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취미생활을 중단하고, 여유 없이 허겁지겁 오로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주위의 욕심대로 공부합니다. 자신의 언어와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헐값에 자신의 영혼을 팔았습니다.

오로지 남이 좋아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어린 나이에 ‘수레바퀴’ 아래서 깔려 죽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수레바퀴는 아닐까?” 자문합니다.

옥수수도 자신의 생각과 언어가 나름 있어야 합니다. 잘 자라도록 격려하되 간섭이나 압력이 되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할 일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농사이고 세상살이입니다. 인생이나 농사는 기대보다 결실이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이 다른 뜻이 있다고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마음먹고 살아가야 합니다. 기죽지 않고 힘내서 또 도전할 용기를 줍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빙산(氷山)에 불과합니다. 산다는 것과 농사짓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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