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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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08.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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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별나게, 별종처럼 살아온 인생이었다.

스물을 넘기고도 철이 없어 버스비와 자장면값만 있으면 장안의 이름난 명사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핸드폰도 변변한 연락처도 없이 물어물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서 대뜸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청하였으니 당하신 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사죄를 빈다.

서울의 변방 오류동에서 산 하나를 넘어 약수터가 있고, 저수지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으면 궁동이 있고, 부천과 경계에 ‘천신신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으로 아담하고 작은 미니 종합대학이었지만, 인문학과 사회참여로 명망이 높으며 한국의 사회 민주화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대학이었다.

그곳에 충북 진천 출신으로 단척의 키에 강단 있으신 이재정 신부께서 총장으로 계셨다. 그분께도 다짜고짜 서너 번 방문하여 귀찮게 해드린 적이 있다. 용인의 어느 대학 신학과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학교 가는 날보다 집에서 책읽기에 몰두하거나 시장통에서 순댓국에 막걸리를 마시다 무료해지면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가곤 했는데, 석간수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 한 잔 마시고 가까운 천신신학교에서 종일 놀다가 오곤 했다.

그 학교에 전학하여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은 후 폭압적인 군부 독재체제를 전복시키고 국회의원 쯤 하려고 투쟁경력도 쌓고 이념서적도 탐독하던 때이다. 대담했지만 한편 허황(虛荒)되기도 했으니, 당시 좀 더 이재정 신부와 연이 좀 더 진행되었더라면 내 인생은 또 어떠했을까 하는 망상도 가끔은 피워 본다. 혹여 가투(거리투쟁)나 화염병 들고 설치다 징역살이도 좀 했을 것인데….

신종 전염병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니 영화관이 텅 빈 틈에 봉은사에 거주하는 가끔은 엉뚱하고 괴짜(?)인 지오스님과 삼성 코엑스몰의 극장에서 군사정권의 비정함과 정보정치의 비열함을 다룬 영화 한 편을 본 후 성공회 대학에서 강의를 하셨던 또 한 분이 생각났다. 한국사회 여러 계층에게 큰 감동의 물결을 안겨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선생이다.

교육자이며 저술가인 그 분과는 살아생전에는 별 특별한 인연은 없었지만, 감옥이라는 절대의 한계 속에서 초인적인 의지로 인간 한계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장본인이 그분임을 감히 언급하고 싶다.

그는 감옥에서의 만남과 사색을 통해 인간이 개별적 존재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더불어 ‘관계’됨을 확신하고 “관계란 슬픔과 기쁨의 근원이다”, 또한 “기쁨도 관계로부터 온다. 양심이라는 것도 타인에 대한 고려다”라고 했으며, 그는 관계에 대한 인식은 “‘더불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고 역량이다”라고도 했다.

‘더불어’ 삶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을 단위로 자신을 개조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신영복은 늘 ‘나’가 아니라 ‘우리’를 생각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란 화폐관계로 획일화되어 있다. 인간관계가 소멸된 상태이다. 서로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지난 권위주의적인 독재정권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다수 인민의 자유는 권력과 부를 움켜쥔 한 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의견에 의해 묵살되던 시기다.

군부독재 정부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압제의 시대였다. 이에 저항하던 대중의 저항으로 온 거리가 최루탄 가스로 뒤덮였던 시기였으며, 때로는 무고한 시민들이 처절히 저항했으며, 그들의 피가 강이 되어 흐른 적도 있다.

잔혹한 폭압에 대한 진실은 오랫동안 은폐되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용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의 불의를 깨닫고 이에 맞서 깨어있는 정신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일은 고단했지만, 그것은 독재자에 복종했을 때 누릴 수 있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거부하는 일이며, 때로는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 깨어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모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려는 의지 때문이다.

붓다께서 생존하시던 시기의 인도 사회도 경제적 부와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브라만 계급의 사치와 향락이 극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물질주의와 쾌락주의를 낳아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사회적 가치관의 붕괴를 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카스트의 계급체계를 흔들어 놓았으며 카스트 계급체계를 뒷받침하던 브라흐마나와 우파니샤드 사상과 권위에 대한 회의가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했다.

이렇게 타락한 사회에서 순수한 수행자로 돌아가려는 소수의 브라만과 현실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궁극의 진리를 추구하려는 크샤트리아가 생겨났다. 또한 가혹한 계급차별과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바이샤 계급이나 수드라 계급에서도 사상계로 진출하는 출가사문(出家沙門)이 생겨났다.

붓다께서는 브라만교의 사상과 출가사문의 사상을 삼종외도 오종악견(三種外道 五種惡見)이라 하시며 인간중심의 실천론적 관점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붓다께서 신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지고 결정된다는 신 중심적 사고의 문제점을 간파하시고 인간 중심의 세상을 여신 것이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신영복의 지배적 사상은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소수의 탐욕과 폭압에 저항하는 이른바 진정한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교육자이자 실천가인 그를 성공회대학 교수로 초빙했던 이재정 성공회대 초대 총장께서 그분을 보내드리며 한 마지막 조사(弔辭)는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불의한 재판으로 선생님의 몸은 가둘 수 있었지만, 선생님의 지성은 가둘 수 없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어 본다. “인간의 자유는 끝없는 저항의 결과였다”라고….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지 않는 자는 노예적 삶에 안주하는 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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