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쇠똥구리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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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쇠똥구리가 그립습니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20.08.25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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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www.jeju.go.kr

저쪽 언덕에서
소가 비 맞고 서 있다.

이쪽 처마 밑에서
나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둘은 한참 뒤 서로 눈길을 피하였다.
 

고은(高恩, 1933~ )의 《순간의 꽃》에 나오는 짧은 시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다녀오면 허리에 찬 책 보따리를 마루에 던져놓고 소를 끌고 풀을 먹이려 나갑니다. 내가 앞장서고 덩치가 나보다 서너 배가 큰 누런 황소가 졸래졸래 따라옵니다. 소는 때때로 길가에 똥을 쌉니다.

그때 쇠똥구리가 보입니다. 자기 몸보다 큰 구슬처럼 생긴 소똥 덩어리를 조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굴립니다. 앉아서 한참이나 쳐다보고 신기해합니다.

쇠똥구리는 소똥 덩어리에 알을 낳는데, 알이 부화할 때까지 어미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 옆을 지킵니다. 덩어리에 곰팡이가 생기면 알에서 나온 유충이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옛날 소똥은 요즘 같은 그런 구린내가 나지 않았습니다. 방부제가 들어 있는 사료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사람 똥 같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쇠똥구리는 사라졌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하퍼 리(Harper Lee, 1926~2016)는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그린 《앵무새 죽이기》를 통해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란 제목만 보고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제목을 보면 죽인다는 표현을 써서 그런지 섬뜩합니다.

소설 화자(話者)는 여섯 살 소녀입니다. 그의 아버지 변호사 애디커스는 주위 백인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톰 로빈슨을 변호합니다. 아버지로 변호사로 애디커스의 한마디는 전 세계 어디서나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는 요즘에 따뜻한 시선으로 다시 반추할 수 있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

변호사 애디커스는 아버지로부터 총 쏘는 것을 배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라고 설명합니다. 농작물을 해치지도 않고,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으며, 오히려 노래를 들려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해를 끼치지 않고 우호적인 것을 해치는 것은 죄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앵무새는 흑인을 가리킨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백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일만 하는 흑인을 미워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해충을 잡으려고 농약을 하다 보면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벌레까지도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죄 아닌 죄로 죽어 갑니다. 쇠똥구리가 그중 하나입니다.

쇠똥구리는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사합니다. 어린 시절 본 곤충 중 가장 보고 싶은 존재입니다. 어떤 해도 끼치지 않고 오히려 소똥이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고, 죽은 땅에 숨통을 터주는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화책을 통하여 마음으로나 볼 수 있는 쇠똥구리를 나는 몹시 그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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