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정씨의 연원은 신라 태종무열왕 원년 간의대부 휘 종은(諱 宗殷)을 시조로 해 그 후손 의경(宜卿)이 영일현백에 봉해졌으므로 그 후예들이 본관을 영일로 정했다.
그후 지명이 수차 변경됨에 따라 오천정씨(烏川鄭氏) 으로 불리기도 했다.
중간에 세보의 실전으로 그 원류는 같으면서도 2대계파로 분립돼 여말 감무를 지낸 극유(克儒)를 1세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설곡계)와 고려조 추밀원지주사에 오른 습명(襲明)을 1세로 하는 형양공파(滎陽公派-포은계)가 그것이다.
역대문중의 대표적 인물로 설곡 사도(雪谷 思道)는 시호가 문정(文貞)으로 모친상에 3년간 시묘한 효성에 감탄한 공민왕으로부터 일성군에 봉해져 명성이 높았다.
익히 잘 알려진 포은 몽주(圃隱 夢周)의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동방성리학의 태두이며 순국충의의 사표로서 만인의 추앙을 한몸에 받고 있다.
정원공(靖元公)의 다섯째 아들 효전(孝全)은 조선조 태종의 일성 부원군에 봉해졌으며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송곡 연(松谷 淵)은 시호가 정숙(貞肅)으로 안평대군의 장인이 된다. 이후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형조와 병조판서를 역임했다.
조선 조의 명상이자 가사문학의 일인자요 당대의 시성인 송강 철(松江 澈)의 시호는 문청(文淸)으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 수많은 단가와 가사를 남겼으며 1589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을 역임했다.
문암 호(文巖 澔)의 시호는 문경(文敬)으로 송강의 현손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근대 이후에도 영일가문은 한국 현대시문학의 선구자 향수의 시인 지용(芝溶)과 대한민국 제 3공화국 공화당의장을 역임하면서도 삼선개헌 반대를 주도한 민주투사 구영(求瑛) 등 수다한 인물을 배출했다.
이처럼 영일정씨는 학문과 의리와 지절을 생명처럼 지켜왔으며 인륜대도를 면면히 이어 온 명문세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