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고봉밥을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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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고봉밥을 기억합니다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0.08.3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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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변해도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하지 않기 위해 쌀밥 먹기를 꺼려합니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9kg이었습니다.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고 과일이나 채소는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쌀의 자급자족은 1970년대 중반이 돼서야 이루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에 고깃국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에 기분 좋은 일은 꽁보리밥일지라도 그릇 수북하게 밥을 담아 먹는 것입니다. 소위 고봉(高捧)밥입니다. 고봉밥은 농업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일종의 관습입니다. 일꾼에게 배불리 먹이고자 하는 깊은 배려심에서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오랜만에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께서 고봉밥을 주십니다. 얹어 놓은 밥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밥을 높게 가득하게 퍼 주십니다. 가난하게 사는 딸의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입니다. 한참 크는 어린 손자가 혹시나 더 달라기 어려움을 감안한 처분입니다.

배려심은 인간다운 아름다움입니다. 구리 요헤이(栗良平)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섣달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 년 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北海亭)도 이날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주인이 문을 막 닫으려고 하는 순간 허름한 차림의 중년 부인이 두 사내아이를 데리고 들어옵니다.

그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미안한 듯 우동 한 그릇을 시킵니다. 우동집 주인은 돈이 없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하는 이들 모자를 위해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몰래 1인분을 더 넣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후 빚만 남기고 죽고 어머니의 힘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이었습니다.

다음 해도 그믐날 그 시각에 어김없이 와서 세 사람이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그때도 그들 모르게 주인은 우동을 더 넣어 줍니다. 어느 해는 그믐날 그 시간 오기 바로 직전에 오른 가격표를 낮게 다시 써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엿한 직업을 잡았고 빚도 다 갚고 살림도 폈습니다. 그해 그믐날은 처음으로 세 그릇을 시켰습니다. 우동집 주인은 그 가족들이 웃음꽃을 피우면서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했습니다. 그동안 우동집 주인은 그 가족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비록 고봉밥은 이제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상대방의 어려움과 입장을 생각하여 공감을 해주고 배려하는 마음만은 살아있습니다. “당신이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는 있지만 당신이 도움을 줄 수 없을 때는 없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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