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나이 마흔 하나에 할머니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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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나이 마흔 하나에 할머니가 됐습니다
  • 하수빈 (베트남)
  • 승인 2020.08.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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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47)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혼인 비중은 8.3%에 달하고 있으며, 다문화 출생의 비중도 5.2%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다문화 인구 역시 이미 100만 명을 넘어 본격적인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적응에 대한 일방적 강요보다는 상호 동반자적인 관계가 절실해진 이유입니다.

이에 밥상뉴스에서는 대전시 비영리자원봉사단체인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 시리즈를 마련하고, 그들의 삶과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기고자의 사생활 보호 등을 위해 사진은 게재하지 않으니 이해를 바랍니다.

 

나한테는 딸 둘과 아들 한 명이 있다. 큰딸은 스물한 살이고, 아들은 열세 살이다. 그리고 막내는 초등학교 햇병아리 아홉 살이다.

나는 올해 마흔한 살이고 아이들도 이제 겨우 초등학생들인데, 벌써 할머니가 되었다. 이렇게 젊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사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큰딸은 먼 고향집에 살고 있다. 비자 등의 문제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10년 동안이나 떨어져 살아야 했던 큰딸은 10년 만에 한국에 와서 다시 그리운 엄마의 손길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큰딸은 한국에 오기 전에 만났던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그를 잊지 못하고 매일 밤 남자친구와 핸드폰으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통화하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났다.

한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큰딸은 남자친구를 찾아간다며 나에게 모녀간의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을 하고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자 큰딸의 결혼 소식이 들었지만, 내 딸의 결혼식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마음이 조금 좋지 않았다. 고향 친정엄마를 통해서 딸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딸아이의 남편은 한국에서 매일 밤 그리워하던 바로 그 남자친구였다.

작년에 친정엄마의 건강 문제로 고향에 갔을 때, 큰딸이 나의 귀국 소식을 알고 찾아왔다. 내 딸 아이는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은 하고 보니 이제야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고백하였고, 우리는 그간 쌓여있던 감정의 앙금을 씻고 다시 나의 사랑스런 큰딸로 돌아오게 되었다.

딸아이는 결혼 후에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찾아가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몸에 병이 있어 자연 임신은 어렵고 시험관 시술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차례에 걸친 시험관 시술을 통해 결국 예쁜 아기를 임신하게 되었고, 올해 초 건강하게 출산을 했다.

나는 이제 갓 마흔을 넘겨 아직 좋은 엄마가 되는 것도 다 배우지 못하였는데, 벌써 나는 할머니 역할을 시작해야 한다.

내 큰딸은 스무 살에 덜컥 태어나 제대로 정도 못 받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한국으로 가면서 엄마한테 버려져 살아야 했다. 그래서 더 엄마가 되어보고 싶어 한 딸이었기에 기쁜 마음 한편에는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겁다.

내 딸은 어떻게 엄마가 되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하고 자랐고, 또한 엄마는 한국에 있어 딸이 손자 키우는 것을 도와줄 형편이 안 되어 걱정이 많다.

하지만 내 딸은 좋은 엄마가 되어 줄 것을 믿으며, 나도 멀리서라도 좋은 할머니가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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