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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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수학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09.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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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5세기 말에서 11세기에 걸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족의 국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게르만족은 야만족으로 알려졌지만 유럽을 지배한 뒤에는 차차 로마의 문명을 받아들여 농업이 주가 되는 봉건사회를 만들었으며 정신면으로는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월이 갈수록 기독교가 절대적인 지배권을 확립해감에 따라 일체 모든 학문은 교회의 학교에서 가르쳤다. 특히 6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수학은 종교수학, 교회수학이라 불리는 성격을 띠게 되며 당시 수학의 내용은 로마식 산술과 시일을 결정하는 역산이 주로 연구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 문명의 중심이었던 수학의 학문적 전통은 끊어지고 새로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신과 결부되는 경향이 더욱 농후해졌다. 일부 신비주의 신학자들의 “신은 무한자”라는 사상은 그리스 수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한론을 후세에 남겨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11세기 말에서 13세기 중엽에 이르는 몇 차례의 십자군 원정은 그때까지의 농업 대신에 상업을 융성하게 했으며 도시들이 활발히 개발되고, 교통도 더욱 번성해졌다. 이전 이교도의 배움이라 하여 배척되어 오던 이슬람의 학문을 배우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아랍의 영토이었던 스페인(특히 코르도바)과 알제리에 유학하기도 하고 아랍의 학자들이 유럽으로 초빙되었으며 아랍 말로 된 교과서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아랍어를 통하여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서유럽의 학문적 수준이 차차 높아져 갔으며 르네상스의 길을 열게 된 것이다.

새로 부흥한 상공업자들은 그들 자신에게 필요한 상업수학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를 설립했고 이에 대항하여 교회 측도 전통적인 학문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을 설립하였으며 이탈리아의 볼로냐대학과 나폴리대학, 프랑스의 소르본느대학,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등이 설립되었다. 따라서 이들 대학에서의 지배적인 생각은 ‘기독교가 절대적이고, 학문은 그 뒷받침을 위한 봉사에 불과하다’는 소위 스콜라 철학이 우세하였다. 그리하여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도 태동한다.

또한 자연 인식에 있어서도 주로 형이상학적 사고방식이 압도적이어서 실험적 견지나 과학적 사고는 대부분 무시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중세 말이 되자 자연 인식에 대한 실험적 사고방식이 더욱 싹트게 되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Roger Bacon, 1214~1294)이 그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아랍의 수학과 자연과학을 깊이 이해했고 자연 인식에 있어서는 먼저 수학과 경험을 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과학적 학설은 당시의 교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완전히 이단자 취급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수학은 신부들이 다루고 있어서 실용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계산은 수판을 사용했고 더욱 번성한 상공업은 교회 수학을 차차 실용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고 수판에 의한 계산 대신에 실용적이고 빠른 인도의 기수법과 계산법이 보급되었다.

이와 같이 교회 수학을 고집하는 수판파와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필산파 사이의 대립이 계속되다 후자가 널리 보급된다. 당시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 피사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등지에서 이슬람 교사에게 배웠다고 전해지는 피사의 레오나르도(Leonardo da Pisa, 1170-1250)는 《수판 책》이라는 큰 책을 쓰기도 했고 이 책은 그 제목과는 반대로 인도와 아랍의 수학, 기수법, 계산법 등을 설명한 것으로서 그 내용을 유럽에 보급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13세기 중세의 중엽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영국의 내란인 장미전쟁과 같은 긴 전란이 계속되고 유행병은 더욱 만연되어 그야말로 암흑의 시대였다. 1509년에 출간된 이탈리아 파치올리(Pacioli 1450?-1520?)의 책에는 인도 기수법에 의한 복식부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우리의 고려시대 개성 부기보다는 훨씬 훗날의 일이다.

파치올리가 이론적으로 복식부기에 접근한 수도사이자 수학자였다면, 속세의 장사치로 세계교역의 중심지 베네치아에서 복식부기를 배우고 익힌 인물이 있다. 근대적인 은행업의 본산 베네치아에서 장사에 눈을 뜬 야코프 푸거(Jakob Fugger, 1459~1525)다.

그는 제국의 변방 아우그스부르크가 좁다하고 활동영역을 넓혀간다. 직물업, 은행업, 광산업에 손대고 정치와 종교와 결탁하여 고리대금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1525년에 타계했을 때 그가 소유한 막대한 부는 유럽 총생산의 2%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쯤에서 고대와 중세 수학의 역사를 곱씹어 보았으며, 수학의 진보에 널리 기여한 교회를 엿볼 수 있었다.

최근 대표적 이단으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 이만희는 중국 우한발 전염병을 퍼트린 혐의와 횡령으로, 전광훈은 2005년 “여자 성도는 내가 원할 때 빤스를 내려주어야 내 성도이다”라는 저질 발언으로 큰 비판을 받은 바 있으며 접입가경 2019년 가을에는 “하나님,까불면 나한테 죽어”, 2020년 2월에는 “반정부 집회에 참석하면 전염병도 낫는다”라는 발언으로 더욱 좋지 않게 악명이 높아졌다.

자칭 목사라는 이들이 제대로 된 신학교는 마쳤는지 알바는 아니지만, 이들의 천문학적 치부는 반드시 들춰 보아야 한다. 교회라면 물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닌 다음에야 사적인 이익보다는 공익의 가치를 우선해야 함에도 이들의 행태는 결코 공익에 위배되는 가치관을 지닌 자들이다. 더구나 이만희라는 자와 전광훈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도 꾀씸했지만 특정 종교의 존엄한 가치를 훼손했으며 이 사회에 분쟁과 다툼의 씨앗을 뿌린 마구니들이 분명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교회가 수학의 발전에 기여했음은 기정사실이었지만, 그러나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전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악마적 행위에 대한 심판은 이제 가혹해야 하며 이 사회에서 절정을 이룬 사이비 개신교의 사기와 부정으로 모아진 천문학적인 교회 자금도 국민의 복리후생을 위해 쓰여지도록 관련법 제정이 시급한 시점이다. 일부 목회자들의 얼빠진 언행과 자산을 늘리려는 계산된 악행에 국민감정은 썩 좋지 않은 듯싶다.

또한 산업사회에서 급격히 성장했던 개신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이유는 뻔하다. 공익을 저버리고 사리사욕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의 계산된 행태에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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