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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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복의 길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10.12 15:3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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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국난극복과 세상의 안녕, 그리고 한국 불교중흥의 기치를 내건 자비순례 걷기에 동참했다. 하루 삼만보 가량을 걸었지만 내일은 좀 더 걸어야 한다.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의 강남 봉은사까지는 멀고도 먼 길이다. 걷기 수행을 하며 좀 더 걸어야 하지만, 다른 일정이 있는 필자는 며칠쯤 부분적으로나마 동참하려 한다. 팔공산을 지나 20여 킬로를 걸어 대구IC 언저리 상하행 차량이 지나는 소음 속 텐트 안에서 이 글을 정리한다.

불볕더위가 엊그제 같더니 제법 선선한 가을이다. 올 초에 완연한 봄을 느끼거나 꽃이 활짝 피는 계절의 바뀜을 즐길 여유도 없이 신록의 계절인가 했더니, 어느덧 낙엽이 우수수 지는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사색의 계절이 되었다.

금년 초 발생한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어쩌면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관계 맺음의 피로함과 역작용보다 관계 속에 부딪히고 마주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삶의 의미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고, 지구는 촌락을 이뤄 함께 위기를 돌파해야 하며 더 나아가 인류는 공동체라는 화두를 주기도 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회성이다. 너나없이 세상의 우리들은 ‘관계 맺음’의 천재였고, 사소한 일로 다툰 친구와 화해를 하며, 별것 아닌 문제로 틀어진 동료를 달래주고, 나 아닌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 등. 우리 인간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러한 감정들을 데이터화 시키고 수치화 시킨 지능 프로그램으로 컴퓨터나 로봇에게 부여하기엔 현재로는 거의 불가능 것이 현실이다.

코로나19 이후 더 큰 걱정은 갈수록 줄고 있는 일자리와 환경문제와 인류의 운명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빅데이터와 딥러닝이란 날개를 단 인공지능의 세상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인류 사회에 엄청난 혼란과 혁신을 불러오는 일만 남았다.

감정을 지닌 인간은 이쯤 되면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두려워진다. 인공지능 때문에 현재 직업의 47%가 지상에서 사라진다는 UN 미래보고서의 발표는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닌 듯하다.

지적 노동의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의 보조 역할이나 하게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구글에선 벌써 비정규직을 고용해 자율주행 자동차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학습할 사진 데이터를 찾는 일을 시키는데, 단순 노동이라 급여가 매우 적다. 그렇다면 훗날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역할을 대체하고,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자아를 갖고 우리에게 덤벼드는 상황도 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그러나 문화, 성(性), 나이에 따라서 달라지는 사회성도 데이터로 만들기에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이 사람은 뭔가 나랑 안 맞아’ 같은 인간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정들 역시 수학적 데이터로 만들기에는 매우 까다로우며, 감정 학습도 어려운데 자아를 갖고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는 스카이넷은 역시 영화에서나 가능한 얘기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효율적인 기술일지는 몰라도, 사회에 어떤 문제가 만연해 있는지 파악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10년 내에 인류 사회를 급격하게 바꿀 거라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대체 불가이다.

요컨대 과학문명이 제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누구에게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요원해질 뿐이며 인간의 삶에는 희, 노, 애, 락이 잔존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항상 마음만이라도 편했으면 했다. 그저 현실에 만족하며 속 편히 사는 게 최선의 삶일테지만, 그동안 살아온 날은 너무도 무지하기만 했다. 하루하루 쓸데없는 욕구불만이, 늘 번민과 고뇌의 산물이었건만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 무지하게만 살고 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작은 것에 만족하고 떳떳하게 사는 길이건만, 오늘에서 비로소 작은 깨우침을 얻게 된다. 삿된 욕심을 적게 지니면 마음만은 평안하고 이 세상 사는 것이 다 오십보 백보라는 걸 뼈아프게 절감한다. 누리고 산다고 해도 중생고를 벗어날 수 없듯이, 가질수록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더해만 가듯이, 이제는 소욕자족하자는 뼈아픈 진실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끓는다.

다만 타인을 아프게 하지 않으면 결코 나 자신도 아플 일 없고 이제라도 더욱 선하게 손해 본듯 살아보자. 헛된 욕심에 결코 굴하지 말고 하루하루 속 편히 살기를 다짐하며 도대체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은 무엇인가?’를 사색해 보다가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이 밤을 지새운다.

아무리 문명이 진보하여 세상이 편리하여진다고 인류가 행복할까? 필자 자신도 차도, 노트북도, 핸드폰조차도 소유하지 않았던 예전이 결코 지금보다 덜 행복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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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后人 李京起 2020-10-13 06:33:45
아 예 스님 글 잘 읽었습니다. 淸貧하게 사는 것이 가장 幸福으로 가는 길 임을 이 淸明한 가을 하늘에 다시 느껴보고 왜 그토록 우리 先賢들께서 그것을 追求하는지 이제서야 어렴풋이 보여지며 또한 얼마후면 夕陽 하늘에 秋風落葉도 지려니 人生事가 다 그러하옵겠지요 ~~

오현합장 2020-10-12 20:15:25
교수님 만행에 건강챙기시기를 기원합니다 오현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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