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약,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상태바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약,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0.10.23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추나 무만큼 신비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손으로 잡기도 어려운 아주 작은 씨앗이 팔뚝만 한 무와 한 아름의 배추로 커가는 모습은 기적처럼 신기합니다.

문제는 조금씩 커가면서 벌레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농약을 쳐야 되는데 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먹으려는 농작물에 농약 치는 것이 내키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제일 많이 접한 농약이 DDT입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DDT를 기적의 농약으로 여겼습니다. DDT는 살충제로 제일 많이 쓰입니다. 어린 배추에 하얗게 뿌린 농약이 마치 흰 페인트처럼 보였습니다.

DDT는 19세기 말에 처음 만들어져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크게 발전하여 한때는 가장 이상적인 제초제와 살충제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제가 군 의무복무 시절인 1970년 중반에는 옷에 이가 참 많았습니다. 당시에 이가 많이 서식하는 겨드랑이 속옷에 DDT를 넣은 작은 주머니를 매달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이후 이가 아주 사라졌습니다. 아마 요즘 젊은이들은 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겁니다.

문제는 DDT 독성으로 엄청난 환경적 피해를 주고 결국에는 많은 생물들이 멸종될 거라는 강한 경고가 나왔습니다.

DDT를 목장에 살포하면 목초를 먹은 소의 살이나 젖 속에 축적되어 인간의 체내에도 쌓이는 소위 잔류성 농약으로 가장 치명적인 환경파괴 물질입니다.

1962년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은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는 무분별한 DDT 사용은 봄이 와도 생태계가 파괴되어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은 죽은 듯한 침묵의 봄을 맞게 될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생명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기적이기에 이에 대항에 싸움을 벌일 때조차도 경외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연을 통제하는 데 있어 살충제 같은 무기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능력 부족을 드러내는 증거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다면 야만적인 힘을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생물들이 지닌 힘을 고려하고 그 생명력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인도해갈 때 곤충과 인간은 납득할 만한 화해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19년부터 PLS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시장에 농작물을 내다 파는 조합원들은 바싹 긴장하였습니다. 국내에 사용등록 또는 잔류허용 기준에 설정된 농약 이외에 등록되지 않은 농약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사용 금지하고 있습니다.

농산물에 잔류하다 검출되었을 때 잔류허용 기준치는 0.01ppm입니다. 이것은 국제규격의 수영장에 수저 한 스푼의 양처럼 아주 작은 양입니다.

이제 아무 농약이나 뿌려서는 안 되고 용량도 꼭 지켜야 합니다. 우리 농협의 농약 판매량은 단일품으로 가장 큽니다. 상업용 작물을 키우는 농민들의 농약 사용량과 농약값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날 함께 농사짓는 친한 텃밭 농부가 유튜브에서 보았다고 하며 막걸리와 사카린을 가져와서 배추나 무에 뿌렸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술이 살충 효과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뿌린 후 보니 벌레가 없어졌나 파란 잎 무와 배추가 성한 모습입니다. “아! 적어도 야만적인 수단은 아니구나. 함께 살아가는 겸손을 보여 주었구나.” 곤충과 인간이 납득할 만한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