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뿌리] 충정으로 여진 막아낸 ‘안정나씨’
상태바
[가문의뿌리] 충정으로 여진 막아낸 ‘안정나씨’
  • 구태경 기자
  • 승인 2020.11.06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전 중구 침산동,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뿌리공원은 1997년 개장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이다. 현재 12만 5000㎡의 부지에 240여 문중의 성씨조형물과 함께 전망대, 잔디광장, 산림욕장, 수변무대 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돼 있어 연인원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뿌리와 효문화의 총집산이 되고 있다. 뿌리공원에 조성된 성씨조형물을 중심으로 각 문중의 유래와 전통을 살펴본다.

곧게 뻗은 두 기둥은 충정과 기상의 상징이며 두 개의 둥근가지는 자손들의 연합과 원만한 성품을 나타내었고 앞뒤에 모두 한글로 ‘나’자를 형상화했다.
곧게 뻗은 두 기둥은 충정과 기상의 상징이며 두 개의 둥근가지는 자손들의 연합과 원만한 성품을 나타내었고 앞뒤에 모두 한글로 ‘나’자를 형상화했다.

안정나씨 시조는 고려 공민왕때 삼중대광 문하시중(三重大光 門下侍中)을 지낸 나천서(羅天瑞)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공민왕 19년 이성계와 더불어 북녘 동령부(東寧府)를 평정하고 군량미 부족으로 굶주린 병사를 진무(鎭撫) 나천서가 수백석 곡식을 구하여 구제했고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고 진력한 공으로 안천군(安川君)과 안정백(安定伯)에 봉군됐다.

이후 경상북도 안정현을 식읍지로 받으므로 나주에서 안정으로 이관해 안정나씨 시조가 됐다.

고려의 국운이 다함에 나천서는 아들 합문지후직경(閤門祗侯直卿)과 함께 안정현으로 내려 와 야은 길재(冶隱 吉再)와 더불어 금오산에 은거하며 고려의 재상으로서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으므로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충북 청원의 홍양사(鴻陽祠)에 배향됐다.

사대를 독자로 내려오다가 오세 유선(裕善)이 세아들을 둬 맏아들 한성참군 계종(繼宗)의 후손을 경파 둘째아들 청산현감 연종(連宗)의 후손을 회덕파 셋째 아들 경흥도호부사 사종(嗣宗)의 후손을 청주파라 하는데 경흥도 부사 사종은 여진족의 남침을 죽음으로 막아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貞)의 시호를 내렸다.

위 삼파의 후손으로 명종때 장음정 나식(長吟亭 羅湜)은 문장기절이 높고, 정음나숙(淨陰羅淑)은 홍문관 부제학으로 청백리로서 형제분이 을사명현이고 구포 나만갑(鷗浦 羅萬甲)은 병자호란때 명신으로 증 좌의정이며 숙종때 명촌 나양좌(明村 羅良佐)는 도학이 깊은 의인이었다.

안정나씨는 청반(淸班)으로서 절의를 숭상하고 충효에 힘써 시조공의 의로움을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왔다 시조 의 묘소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동 계좌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힘내라! 중소기업
내 몸을 살리는 야생차
가문의 뿌리
대전의 고택
인물로 본 충남역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