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한글은 내 한국삶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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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한글은 내 한국삶의 무기
  • 박지현 (필리핀)
  • 승인 2020.11.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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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52)

저는 필리핀에서 온 박지현입니다. 2008년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2012년 한국국적을 취득하였습니다. 현재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이 있습니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 저와 악수하지 않으려던 행동을 보고 신사 같고 너무 착해 보여 감탄했고 반했습니다. 한국문화 중 하나인 줄 몰랐습니다.

저는 처음 한국에 와서 문화, 음식, 계절, 언어 때문에 충격을 받아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한 가지만 주문했는데 반찬이 많이 나와서 어떻게 다 먹을까 걱정까지 했습니다. 젓가락을 사용할 줄도 몰라서 너무 불편했는데 ‘네, 아니요, 몰라’ 밖에 몰랐던 제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궁금해도 물어볼 수가 없어 답답했고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을 못 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오해하고 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 작은 아주버님의 아내가 같은 필리핀 사람이며 저보다 한국에 먼저 와서 자국어로 답답함을 호소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필리핀에서 결혼 사증 발급 전 의무교육을 받았는데 내용 중에 한국에서는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남편들이 출근할 때 밥을 챙겨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입국 전에는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니까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제가 자란 환경은 저의 아버지께서 일 마치고 집에서 오시면 요리, 설거지, 빨래, 다림질 등을 다 하십니다. 저의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몇 번밖에 못 봤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집안일 중에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요리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밥 먹을 때 기본적으로 국, 밑반찬 5가지 정도는 있어야 해서 오후 5시만 되면 오늘도 어떤 반찬 만들어줘야 할지 머리가 아프게 시작합니다.

남편이 쉬는 날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만 하고 저는 갓난아기를 보느라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밥도 못 먹었는데 남편이 코앞에 있는 리모컨까지 갖다 달라고 할 때 왠지 저를 가정부로 취급하여 기분이 엄청 나빴습니다. 특히 추석, 설날 때 시댁에 가면 며느리들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명절 음식을 만들고 끝이 없는 설거지하느라 너무 힘든데 반면 남편은 아주 편안하게 누워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모습을 당시 봤을 때 너무 화가 났습니다.

필리핀에는 크리스마스, 설날, 축제가 있으면 남자들이 대부분 요리하기 때문에 4년까지 명절 때마다는 우리 부부의 싸우는 날이었습니다. 제 감정은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어서 울기만 했습니다.

남편은 한국에 입국하기 전 이미 우리 부부가 살 집이 준비했으며 옆집은 큰 시누이가 살고 있습니다. 큰 시누이가 집에 자주 오는데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 서로 한 마디 밖에 못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누이가 저에게 “올케 내가 너의 집에 자주 오는 것 귀찮지”라고 물었는데 저는 괜찮다고 이해하여 아주 당당하게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갑자기 “아니야”라고 하여 제 속으로 ‘남편은 왜 아니라고 하는 거지, 나는 정말 괜찮은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한글 수업하러 갔는데 ‘귀찮다, 괜찮다’ 차이에 대해서 배우게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제일 힘들었던 것은 한국에 온 지 3개월 되었을 때 우리 딸을 임신했는데 한국 음식은 제 입에 안 맞고 필리핀 음식, 열대 과일(안 익은 망고)을 먹고 싶을 때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무언가 먹고 싶을 때 돈이 없어서 사지 못한다면 참을 수 있지만 소통이 안 되어서 사먹지 못한다는 것에 제 자신이 무척 화가 났고 답답했으며 친정 부모님이 제일 그리웠습니다.

남편과 자주 부딪힌 일은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육아를 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똑같이 첫 아이라서 어쩔 줄 몰랐으며 매우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형님이 일주일에 두세 번 우리 집에 찾아와서 저 대신 우리 딸을 목욕을 시켜주었고 육에 대해서 자국어로 가르쳐주었습니다. 동서의 농담으로 “아이를 만들 줄 알면 목욕시키는 것도 알아야지”라고 정신 차렸습니다.

저도 이제 어머니가 되어서 스스로 다 해야 하여 한국에서 자식을 키우려면 기본적으로 한국어부터 알아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3일 만에 남편이 저를 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 바로 보냈으나 낮에 수업이 끝나면 한국말로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한국어 실력이 늘지 않았습니다.)

육아 방식, 생각, 문화, 나이 차이 때문에 의견이 맞지 않는 데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무척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출산한 지 4개월쯤 저의 집 가까운 곳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세 군데나 있어서 딸을 안고 한글, 요리, 컴퓨터 수업을 열심히 다니고 방문지도사, 멘토 선생님까지 신청했습니다. 한글 수업이 끝나고 방문지도사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면 덕분에 이야기할 한국 사람이 있어서 한국의 육아 방식, 회식 문화, 선생님의 결혼 생활도 듣고 하여 남편을 서서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한국문화에 대해서 몰랐을 때 아이 예방접종하는 날에 남편이 같이 안 가주면 많이 서운했습니다. 아이가 많이 울면 남편이 시끄럽다고 오히려 저에게 짜증내고 도와주지 않고 안 그래도 하루 종일 육아하고 집안일 하느라 거의 쉬지 못했는데 남편은 자기만 해서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나중에 한국어로 어느 정도 알아듣고 말할 수도 있게 되어 조금씩 한국문화를 이해하게 되었고 한국생활에도 적응하여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바깥일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미안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소통이 잘 되면서 우리 부부가 서로 자란 환경, 필리핀과 한국문화, 나라의 역사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생각, 의견, 차이가 있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 자란 환경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으며 받아들이고 존경하여 부딪힌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5년 후 우리 부부는 맞벌이하며 남편은 자녀들을 돌보고 집안일까지 다 도와주기도 합니다. 3년 전부터 큰 아주버님의 사정으로 남편은 막내지만 제사는 우리 집으로 옮기겠다고 하여 기꺼이 받아들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싸우지 않도록 전날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한국인 남편들은 가장으로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공개 수업, 면담 등을 제가 참석합니다. 아이들이 병원에 가야 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왠지 일반 한국 어머니처럼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을 느끼고 남편은 마음이 놓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말을 못 했을 때 저만 답답하고 힘들어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필리핀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문화 의사소통 때문에 부부·가족갈등이 자주 발생하고 힘들어하면 선배로서 상담하고 본인의 의사를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근로자들이 부당한 일은 당하면 통역도 합니다.

남편을 믿고 낯선 땅에 처음에 왔을 때 의사소통 때문에 많이 힘들었으나 소통이 잘 되어 편리하게 생활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제 자신을 방어할 수가 있어서 생각해보니 한글은 외국인으로서 나의 무기이기도 하고 뺏길 수 없는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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