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생 형님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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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생 형님을 보내며
  •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 승인 2020.12.10 10: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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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형님, 속리산 시절이 마냥 그립습니다.

공양간에서 삼색 나물에 참기름, 고추장 넣고 맛나게 비벼 먹은 점심공양은 지금도 가끔 군침을 돌게 합니다.

올해 초 음지에 서러운 듯 나 홀로 핀 선홍빛 진달래가 채 지기도 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실속 없이 분망하기만 했던 못나고 무정한 아우를 찾아오셨을 때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놀아드리지도 못했는데, 돌이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가시니 이제야 가슴을 치며 후회가 막급할 뿐 입니다.

운제산의 초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낙엽이 한 올도 없이 우리네 인생처럼 헐벗어 있습니다. 깊은 밤이 되었지만 밖에는 바람 소리만 을씨년스럽고, 고즈넉한 산중 깊은 암자에선 저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생이 형님!

얼추 30년 성상이 다 되어가는 형님과의 지난 세월을, 그 수많은 추억을, 이제 가슴에 묻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였던가? 반연(攀緣) 있는 어느 후배의 누이, 아들딸도 낳지 않고 죽은 그 젊디 젊은 여인의 원통한 장례식장에서 피자를 제사상에 올리고 장엄염불과 반야심경 한 자락을 성급히 마친 후 너무도 배가 고팠던 나머지 우리는 그 피자를 염치불구 신나게 먹으며 희희낙낙 했다고, 부산의 운공이는 지금도 가끔 그때를 회상하며 그때의 황당함에 웃곤 합니다.

오늘 사시에는 법당에서 촛불이 춤을 추며 타들어 가고 잠시 눈을 감고 무상계를 한편 독송해 보았습니다.

“겁의 불이 크게 타면 대천세계 무너져서
수미산과 큰 바다도 남김없이 소멸되
하물며 이 몸뚱이 생로병사 근심 고뇌 무너지지 않겠는가?”

수일 전 2시간 남짓 다비 후 남은 형님의 한 줌 유골을 보며 허망하고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황급히 자리를 뜨며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 내 모습도 저러하지 않겠는가 하는 무상의 가르침이 내내 교훈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 훌륭한 명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죽음이 늘 멀리에 있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있었음을 망각하고 살다가 오늘 죽음을 생각한 하루는 삶을 생각하는 하루보다 더 값진 하루였습니다.

각생 형님!

죽은 자를 기리는 제삿날은 또 누군가의 생일날이듯 살고 죽는 것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난 이들이 떠날 때면 다시는 살아서는 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가슴 아픈 영원한 이별에 이 중생은 통한의 눈물이 흐릅니다.

‘공수레 공수거’라 빈손으로 와 빈손으로 가는 인생, 발가벗고 와서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발가벗은 채로 훌쩍 고독사로 가신 각생 형님! 다음 생에는 눈 깜짝할 사이 번갯불에 콩 볶아 내는 그런 짧은 세월을 사는 허망한 인생살이는 이제 그만두시어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산다는 주목이나, 오랜 세월 산다는 나무로 태어나서 천 년 만 년 세월을 굳게 우뚝 서 견디어요. 다음 생에는 골골 아프지도 말고 백 년도 못사는 인생 노릇보다 모진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천년쯤 살아 보자구요. 속리의 천년 세월 묵묵히 지켜보는 정이품송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살길을 걸어봅시다.

아우도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삶이란 덧없는 집착에서 벗어나 여여하게 남은 인생 세찬 삶의 여정을 굳굳하게 잘 걸어서 다 마치고 난 뒤에 저승에서 다시 형님을 뵈올 때는 우리 스승님의 간곡하신 당부로 미처 마시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곡차나 실컷 배가 터지도록 마실 텝니다.

天堂佛刹 隨念往生 快活快活
천당불찰 수념왕생 쾌활쾌활

이제 천당이나 부처님 계신 곳에
마음대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쁘고 기쁜 일입니다.

탄탄(용인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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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2020-12-10 12:59:25
초겨울의 쓸쓸함이 묻어나네요
서정적인 하루 입니다
감사합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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