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뿌리] 조선시대 문과 급제 12명 '고성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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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뿌리] 조선시대 문과 급제 12명 '고성남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1.18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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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받침대는 남씨의 3파(고성, 의령, 영양)을 상징함으로서 고성남씨의 뿌리의 근원을 상징하고 상단의 대칭형태는 고성남씨의 자손들이 무한히 뻗어나가는 공 간 지향적 형태로 대지를 굳게 디디고 선무한을 향한 인간의 추상형태이다. 상단 중심부 반구 부조는 고성남씨의 꿈과 이상의 상징적 결정체로서 원만하고 부드러운 인간미를 상징하면서 작품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극대화하는 기능을 하도록 구상되었다.후면의 양각부조는 줄기찬 생명력의 번식과 미래를 지향하며 남씨(南氏) 후손들의 생명력과 번영 을 기원하는 상직적 식물로서 시각적인 효과를 도입했다.
3개의 받침대는 남씨의 3파(고성, 의령, 영양)을 상징함으로서 고성남씨의 뿌리의 근원을 상징하고 상단의 대칭형태는 고성남씨의 자손들이 무한히 뻗어나가는 공간지향적 형태로 대지를 굳게 디디고 선무한을 향한 인간의 추상형태이다. 상단 중심부 반구 부조는 고성남씨의 꿈과 이상의 상징적 결정체로서 원만하고 부드러운 인간미를 상징하면서 작품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극대화하는 기능을 하도록 구상되었다. 후면의 양각부조는 줄기찬 생명력의 번식과 미래를 지향하며 남씨(南氏) 후손들의 생명력과 번영 을 기원하는 상직적 식물로서 시각적인 효과를 도입했다.

남(南)씨는 연원이 장원하고 계보가 화창하니 영의공 휘 민(敏)이 고덕으로 사성득명하여 가문을 열고 시조가 되었으며 그 자손들이 번성하더니 고려 중엽에 영양 의령 고성 삼파로 분관하였다.

고성남씨는 관조 휘 광보(匡甫)의 덕화로 사대부가 연이어 나왔다. 8대손 휘 기(奇)는 고려말 공안부윤을 지냈으나 이조의 입국에 즈음하여 높은 절의를 지켜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아들 도암 휘 금(琴)은 태종조의 명신으로 병조판서에 올랐으며 좌의정에 증직되었으니 창문과 중문 참봉 의문 직제학 수문 진사 익문 등 5남을 두어 모두 학행이 뛰어나 5봉(鳳)이라 칭했다. 특히 넷째인 경재공은 학덕과 웅문으로 일세의 큰 스승이 되기에 동국명문선에 뽑히고 세종의 신임이 두텁고 사림의 칭송이 융성하니 공의 부자에 이르러 영의공 이래의 학문이 꽃을 피웠다.

그 후로 충효 절행과 학문으로 이름을 떨친 이가 많아 청절 문풍의 전통을 뚜렸이 세웠다. 전한 송파공 휘 세주는 문학이 뛰어나 크게 드날릴 것을 기대했으나 연산조의 어두운 세월을 만나 간언하다가 죽으니 그 충절이 천고에 빛나고 사인 우천당 휘 봉년과 전적 서계공 휘 추는 정암 선생에게 배워 학행이 출충했으나 청절로 일관하다가 영달치 못하였다.

그 뒤는 부사 휘 규년과 참봉 휘 인 찰방 삼괴당 휘 지언과 직장 휘 경효 등에 걸쳐 그 충효 정절 문행이 커다란 계맥을 이루어 왔다. 이러한 가문이 두어번 사화를 만나 사방으로 낙향하니 봉사 휘 신은 동생 휘 임과 같이 대전 석교동에 이거 정착하였고 그 현손 형조참의 휘 분붕은 높은 벼슬을 사양하고 봉소루를 지어 후생의 강학에 전념하였다. 그 후손들은 340여년이나 유산과 가문을 지켜 발전시키며 내일의 번영을 기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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