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고생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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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고생으로…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
  • 이호영 기자
  • 승인 2021.03.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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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시의원] 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원

“저는 다시 여고생 1학년입니다”

정확히 46년 전이다. 1974년 광명실업전수학교에 입학해 3년간 눈물겨운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만학의 길에 들어서 주성대(현 충북보건과학대) 졸업장을 받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이후에도 한밭대 경영학 학사, 충남대 행정학 석사를 거쳐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진학에 이르기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바로 김인식 대전시의원의 이야기다. 그런 그가 올해 다시 고등학생이 됐다. 3월 2일 학력인정 대전시립중고등학교에 입학한 것.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40여 년 만에 다시 고등학생이라니, 무슨 일인가?

지난 2019년 저는 한순간에 제 46년 삶이 송두리째 지워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웅변으로 장학금을 받아가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고, 그 눈물겨운 졸업장을 들고 만학도가 되어 대학과 대학원까지 마쳤는데, 어느 날 날아든 통지서 한 장에 저는 별안간 중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의 입김인지 현직 여당 국회의원과 국민권익위, 방송사, 교육부까지 동원됐습니다. 비열한 정치판의 놀음에 말문이 막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에 한동안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았습니다.

그러던 중 저와 똑같은 일을 당한 한 분이 찾아와 제 손을 부여잡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일어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1학년 여고생입니다.

- 쉽지 않은 결정이다.

제 세대는 보릿고개를 겪으며 억척스럽게 산업화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은 40%도 안 됐죠. 스스로 강인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혼자 있으면 눈물밖에 안 나왔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에 집착해 마음을 소모하면 안 되겠다 싶어 어렵게 어렵게 결심했습니다. 그 시대 같은 아픔을 겪었던 분들께도 저를 보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2일 입학식을 마치고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주 5일 등교하면서 낮에는 의정활동, 밤에는 공부를 하며, 살림에 손주보기까지 무척 분주하고 바쁜 나날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꼬박꼬박 출석해 반드시 모범생으로 졸업장을 받을 것입니다.

- 억울하지는 않나.

제가 학교 다닐 당시 대전에 전수학교가 16곳이 있었는데, 문제 삼은 곳은 제가 나온 곳을 포함해 2곳뿐입니다. 나머지는 구색 맞추기 정도였죠. 당초 K국회의원이 나섰다가 학력인증 코드상 입학절차에 문제가 없자 국민권익위에서 조사를 나오고, 그래도 문제가 없자 서울의 중앙 방송사에서 찾아와 무단으로 의원실과 선거홍보물 얼굴까지 찍어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이후엔 P국회의원실에서 교육부를 움직여 학위취소를 안 하면 행정처분을 하겠다고 학교를 압박했습니다. 굳이 평범한 일반인 몇 명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누가 봐도 저를 타깃으로 한 것이죠.

누구 자식은 부정입학이 확인됐는데도 학위취소를 안 하고, 누구는 학력위조 의혹에 대해 자료제출을 못하겠다고 하니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의 편에 서서 보호는 못해줄 망정 멀쩡히 학력인증 코드가 남아있는 사람을 이렇게까지 핍박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 촛불정신의 가치인지 되묻고 싶을 뿐입니다.

- 그래도 정치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중·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중앙시장 난전으로 10식구 생계를 꾸렸는데, 어느 날은 건달들이 수레를 발로 차며 행패를 부리고, 어느 날은 파출소에 끌려가 모진 수모를 겪곤 했습니다. 솔직히 저라도 없으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학교가 끝나면 교복을 입은 채로 매일같이 달려가 도와야 했죠.

졸업 후 돈을 벌어야 하기에 20대 초반부터 웅변학원을 하면서 대선, 총선 가릴 것 없이 후보들 연설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눈물겨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치권과 인연이 되다 보니 안 가본 곳이 없었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제도권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다시 뼈저리게 실감해야 했습니다.

제가 의원이 된 뒤 지금까지 장애인·아동·임산부·다문화가족·공무직 등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큼은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이유이고, 아무리 어려워도 제가 정치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 그런 노력 덕분인지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다.

제가 처음 시의원에 도전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가족을 설득하는 일부터 공천, 선거자금 마련까지 여성의 정치입문은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오죽하면 유리천장에 비교하겠습니까. 그 속에서도 여성 최초 선출직 광역의원, 여성 최초 광역의회 의장, 여성 최초 17개 시·도 의장단협의회 사무총장, 여성 유일 전국 광역·기초의회 4선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올 수 있었던 건 누군가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앞으로 여성 정치인 인프라를 만들고 싶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당에서 진행하는 요식적 아카데미가 아니라 현장으로 나가 여성 후배들을 찾고, 만나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준비된 정치인을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런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의정활동을 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가 속한 서구갑 지역구는 서구을에 비해 굉장히 낙후된 구도심이 많습니다. 주민들도 ‘같은 서구에 사는데 이래서 되느냐’고 엄청난 소외감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동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정책적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서구만이 아니라 대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 아이디어와 CEO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필요합니다. 행정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시장은 도시브랜드를 높이고, 기업을 유치하고, 먹거리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늘려야 합니다. 구청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만나든 지역을 홍보하고, 사업을 유치하고, 예산 끌어오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지 안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면에서 안타까움이 큽니다.

- 앞으로 목표는.

그동안 도안대로 착공, 관저다목적체육관 수영장 신설, 관저동상가 주차장 건설 등 심혈을 기울인 굵직한 사업들이 차질없이 진행돼 보람을 느낍니다. 평촌산업단지 기업유치와 구봉산 둘레산 잇기 사업도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습니다. 나머지 지역구 현안들도 꼼꼼히 다시 점검하고 챙기며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요즘 정치가 시민들 보시기에 곱지 않고 성에 안 차는 면이 있겠지만, 사실 그 이면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며 발로 뛰는 지역 정치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좀 더 고운 시선으로 봐주시면 더 열심히, 발전적인 의정활동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인식 의원 프로필

▲선거구 : 서구 제3선거구(가수원동, 관저1·2동, 기성동)

▲소속정당 : 더불어민주당

▲학력

- 주성대(현 충북보건과학대) 청소년문화복지과 졸업(취소)

- 한밭대 경영학과 졸업(취소)

- 충남대 행정학 석사(취소)

- 충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이수(취소)

▲경력

- 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전)

-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지방의원협의회 공동대표(전)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현)

- 한국어린이집 총연합회 운영협력위원(현)

- 제5대 대전시의회 의원(전)

- 제6대 대전시의회 후반기 부의장(전)

- 제7대 대전시의회 전반기 의장(전)

- 제8대 대전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전)

- 제8대 대전시의회 윤리특별위원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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