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임진왜란 때 의병 모아 공 세운 '광산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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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임진왜란 때 의병 모아 공 세운 '광산탁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5.0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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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조형물은 활활 타오르는 두개의 핵이 하나로 매듭지어져 우리 문중의 화합, 발전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화합과 무궁한 번영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조형물은 활활 타오르는 두개의 핵이 하나로 매듭지어져 문중의 화합, 발전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화합과 무궁한 번영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려 선종조(1084∼1094)대에 높은 덕망과 학식으로 한림학사와 태사의 벼슬에 오른 광산군지엽(之葉公, 호 學圃, 시호 文成)을 시조로 모시는 광산탁씨는 명문세족으로 대를 이어 번영했다.

충해왕조대에 예의 판서와 간의 대부를 지낸 8세 광무(光茂, 호 景濂, 시호 文正:1330∼1410)조와 조선조 세종조대에 대광보국숭록대 부 의정부좌참찬겸 찬성사로 있을 때 세종대왕에게 조정에서 시금한 일로 '성을 튼튼하게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함이 최우선'이라고 간한 9세 신(愼, 호 竹亭, 시호文貞:1367∼1426) 조대에 이르러 가문의 광휘는 절정에 달했으며 학문적으로 높이 추앙받아 안동군 길안면 세덕사에 제향되었다.

병란평정에 공이 컸던 15세 순창(順昌, 호 松菴:1495∼1594)조는 가선대부 훈련대장으로 추서되었고 17세 상(祥: 1544∼1597)조는 임란(선조25년:1592)에 창의군으로 참전, 권율장군을 도와 왜적과 분적했으며 정유재란시 크게 전승을 거두고 전사한 충절로 1633년 조봉대부 호조좌랑으로 증직되었으며 그의 아들 율(1563∼1597)조는 전사한 부친의 시신을 수습코자 진중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여 효자로 명정되었다.

또한 19세 연(鍊)조도 이순신 장군을 보좌해 아우 석, 원조와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과 수차례 싸워 공을 세우고 당항포 해전에서 순절했다.

'만고에 이 탁씨요, 만고에 이 광산이라. 근세에 이르기까지 전세를 빛내고 후세를 여는 도가 이보다 더함이 그 어느 가문에 있겠는가?'. 이는 광산탁씨 가문에 대한 한 학자의 평이지만 광산 탁씨의 긍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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