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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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철학
  • 탄탄스님
  • 승인 2021.05.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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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북조선 사리원에 국수공장을 차려주신 법타 조실 큰스님의 화두는 ‘밥이 통일’이다. 늘 거리를 헤매며 노방 포교를 하는 조계사 진관스님은 ‘인권’이며, 또 어느 인사는 ‘공정’이라고 하는데, 어느 저잣거리의 그 누구라도 그 무엇을 향한 절실한 인생의 목표가 있다.

이를테면 ‘이상’이라고 하는 것인데, 오늘 나도 화두가 있으니 감히 ‘똥’이다. 어느 누구는 사랑이고 우정이고 진실이며 성공이라는데, 내 인생의 화두인즉슨 하필이면 ‘똥’이런가. 똥은 그 어떤 가치보다 저평가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최고의 스트레스(배변기) 역시 똥이니, 똥은 인생의 숙제인 것이라.

똥 구린내는 그 어떤 구수한 향기보다 진실되다. 오롯이 정직한 섭생을 마주하고 명확하게 확인하는 준엄한 심판이다.

‘죽을 똥 싼다’라는 말처럼 노인이 천대받거나 버림받는 이유도 결국은 똥 때문이다. 똥오줌 못 가리는 부모를 버리는 패륜 연놈들만을 나무랄 것이 아니다. 제 똥 구린 줄은 모르니, 어느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한 아홉 개 구멍에서는 오물이 토해지고 어느 구녕에서는 간절한 화두 하나 던져진다.

그 어떤 존재론적 주제 하나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드냐고, ‘죽을 똥 살 똥’ 버텨 온 것이 얼마나 값지냐고. 버릴 수 없다고 채우기만 한다면 살 수 없는 이치이니, 소욕자족하며 버리고 또 버리면 가벼워지나니, 성스럽기조차 한 이 배변의 시간 변비로 고통을 마주하고 배에 더욱 힘을 준다. 이쯤 하면 똥이야말로 ‘길이요 진리’이다.

싸지 못하는 인고의 시간은 차라리 고통이다. 변비에 걸려 본 이는 마땅히 동조하리라. 진땀 흘리며 된똥을 누고 난 후 고해에서 빠져나온 그 쾌감이며 그 환희로움, 날아갈 듯 가벼워진 ‘버림의 미학’을 체득하는 똥간의 철학. ‘변소’가 다시 돌아보는 장소라는 의미 있는 말씀에 아멘, 할렐루야다.

질량 불변의 법칙을 가늠하는, 먹은 만큼 토해내야, 아니 싸야 하는 똥 싸는 시간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공부의 시간이며, 의례이고, 의식이어라. 똥이 진실로 화두가 되는 순간이다. 히죽히죽 나를 향해 자조하며 반성하고 때로는 돌팔매질하고 싶은 시간 ‘더러워, 더러워, 내가 왜 이렇게 더러워’를 자책할 수 있는 나는 나를 성스러워할 수 없는, 아침 먹어 점심 먹어 저녁 먹어 세 끼 다 처먹어 이 세 끼 다 삼키고 내 몸의 덩어리 그 하나를 풍덩 변기에 처박는다. 시원하다.

아침이면 언제나 똥통에 나를 버린다. 오물 속 나락으로 떨어져 고통의 자유를 인식하는 철학의 시간, 똥을 싸기 위해 사는 존재 아랫배에 힘을 주며 자연을 받아들이며 “산은 산이로다 물은 물이로다” 나는 나를 닦으며 성실하게 수도를 한다. 얼룩진 기억들을 닦듯 어제를 닦고, 오늘을 닦으며, 나태함을 닦고, 슬픔을 닦고, 항문을 닦고, 분노를 닦고,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순간 똥은 화두가 되어지는 것이다.

닦고 또 닦아 학문을 조이고 항문을 철학 철리하는 이 아침도 변기는 내 좌부동이며 코를 쏘는 똥 내음 그윽한 변소간은 내 수도원이고 똥이 한편의 시가 됨이며 근심을 풀어주는 해우소이고, ‘똥은 금보다 가치 있나니’ 똥이 절절한 화두가 되는 이유다.

탄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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