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고추 세계와 인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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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고추 세계와 인간의 세계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5.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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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협에서 하는 사업 중 늘 노심초사하는 일은 모종 사업입니다. 봄에는 고추, 가을에는 김장 배추를 전문 양묘업자에게 계약재배하여 조합원에게 공급합니다.

매년 최선을 다한다 해도 조합원의 마음에 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웃자라 너무 키가 커 있어 바람에 넘어질 것처럼 약해 보이고, 어떤 때는 키가 작아서 과연 제대로 성장할까 걱정 가득하여 의심합니다.

우리에게 공급하는 업자는 30년간 이 사업을 한 베테랑으로, 키우는 과정은 매년 거의 같지만 키운 결과는 언제나 다릅니다. 그런데 몇 주만 지나면 걱정은 사라집니다. 욕심을 버리고 참고 기다리는 문제입니다.

저는 한 식물에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어쩌면 고추 세계와 인간 세계는 거의 같습니다. 먼저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모종을 땅에 옮기기 전에 3~4일 정도 밖에 두고 적응을 하도록 합니다. 풍찬노숙하는 마음의 각오도 필요합니다.

심을 때는 모종 뿌리를 짧게 잘라 주어야 합니다.

고추도 살기 위하여 뿌리를 내리려고 힘쓰기 때문에 일찍 활착이 됩니다. 어릴 때 아이가 넘어지면 생각 있는 부모는 스스로 일어나게 합니다.

물과 햇볕, 영양분이 필수입니다.

영양분은 질소, 인산, 가리가 기본으로 부족하거나 많으면 탈이 납니다. 인간도 많이 섭취하면 비만이 되고, 적으면 영양실조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식물에도 인간처럼 비타민이 필요합니다. 다만 인간과 달리 스스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비타민을 만드는 재료인 미량원소를 공급 해주면 됩니다.

사전에 균이나 해충 피해를 막기 위하여 농약을 미리 써야 합니다.

방금 태어난 아이에게는 예방주사를 놓듯이 모종을 파종할 때와 땅에 옮겨 심을 때 일종의 예방약을 주사하여야 합니다.

모종을 땅에 심고 나서 피어난 첫 꽃은 따주어야 합니다.

이 첫 꽃에 너무 많이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고른 성장을 방해합니다. 우리도 첫 자식에 너무 많이 기대하고 모든 정력을 쏟는 것과 같습니다.

고추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 봅니다.

“주인님, 잎이나 줄기를 세심하게 관찰하여 물이나 영양분을 챙겨주고, 햇볕이 골고루 쬐도록 가지도 좀 쳐주고, 태풍에 가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든든한 지주도 해주고, 가끔은 미량원소나 복합비료도 주면서 벌레나 균에 시달리지 않도록 제 때에 조치해 주세요.”

그러면서 다정하게 이 말을 할 것 같습니다.

“자주 오셔서 정이 들면 주말에 오시는 주인님을 기다리는 마음에 저는 금요일부터 행복할 것입니다.” “주인님, 그리고 한 가지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저는 오로지 주인님의 발자국 소리와 하늘의 도움에 달려있으니까요. 자칫 불행해져요. 저도 속상하고요.”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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