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와 인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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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모파상의 ‘비곗덩어리’와 인간경영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5.24 11:3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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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모파상(Guy de Maupassant, 1850~1893)의 출세작인 《비곗덩어리, Boule de suif》는 인간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입니다. 문제의 대상은 비곗덩어리라는 뜻인 ‘불 드 쉬프’라고 불리는 매춘부입니다. 그녀의 싱싱한 자태는 보는 이의 눈요기가 될 정도로 애욕의 대상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소위 ‘보불전쟁’이라고 불리는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간 전쟁 동안 일어났습니다. 프로이센 점령 아래 있는 프랑스의 어느 도시 사람들이 어렵게 구한 여행 허가증으로 그 도시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아주 추운 날, 모두 열 명이 4마리의 말이 끄는 큰 마차를 함께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업가이거나 귀족인 세 쌍의 부부와 두 사람의 수녀, 한 사람의 공화주의자가 타고 있었고, ‘비곗덩어리’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마차는 간밤에 내린 눈 때문에 지체가 많이 되어 점심이 훨씬 지나도록 중간 기착지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허기져서 자기들끼리 오가던 이야기도 그쳤습니다. 그때 ‘비곗덩어리’가 커다란 바구니를 꺼내 통닭을 비롯한 준비해온 음식을 접시에 꺼내놓고 먹으라고 권합니다.

처음에는 ‘비곗덩어리’를 본 척도 안 했던 그들입니다. 사양하는 척하다가 ‘전시에는 전시답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체면 가리지 않고 꿀꺽꿀꺽 맛있게 먹습니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동안에 그녀에게 말도 시킵니다. 그녀는 알고 보니 그녀의 집에 찾아온 프러시아 군인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숨어지내다 탈출한 것입니다. 모두들 용감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고 호감을 가집니다.

저녁 늦게 시내의 여관에 도착하자 프로이센 장교가 여행 허가증을 한 사람 한 사람씩 검열합니다. 그 장교가 엘리자베트 루셰라는 이름을 대며 ‘비곗덩어리’를 자기방으로 오라고 합니다. 처음에 그녀는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비위를 거스르면 절대 안 된다’는 주위의 말에 마지못해 갑니다.

10분도 안 돼서 황급히 새빨개진 얼굴로 들어와서 씩씩거리며 그 장교를 욕합니다. 다음날 그 검열 장교의 방해로 마차는 출발하지 못합니다. 짐작컨데 ‘비곗덩어리’와 하룻밤을 자지 않고서는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출발하지 못하자 온갖 감언이설, 이치와 감성으로 호소하는 공동작전으로 그녀를 설득합니다.

결국 그날 밤 ‘비곗덩어리’는 프로이센 장교의 청을 들어주고 다음날 아침 마침내 그곳을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거북하고 부끄러워하는 눈치를 보이며 조심스럽게 걸어오자 더럽고 쓸모없는 물건처럼 외면합니다. 그녀의 덕분에 무사히 출발하게 되었다는 것을 잊고서 막말을 하며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말도 걸지 않습니다. ‘비곗덩어리’는 분노에 온몸을 떨며 처절하게 흐느낍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모파상은 인간의 극도의 이기심을 이렇게 독하고 적나라하게 그렸을까 뒷맛이 씁쓸합니다.

경영을 하다 보면 생각대로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경영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심사숙고하여 투자나 대출한 것이 처음과 다르게 부실이 되거나 연체가 될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업이 잘 굴러가는 초기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그것이 잘못되어 경영에 조금이라도 부담이 될 경우에는 온통 책임을 수고한 직원에게 돌리는 것이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일종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하는 식’의 집단심리입니다.

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저것 문젯거리가 생기는 법입니다. 일 안 하거나 못하는 사람은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럴 때 자칫 조직 내부의 분위기가 되는대로 가도 좋다는 식의 복지부동이나 무사안일 풍조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간에 공동체를 위하여 힘쓴 자에게는 적극적으로 신뢰를 주어야만 합니다.

팝스타 마돈나(1958~ )는 노래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든 대상을 자기 속으로 합병하려는 자신을 ‘속세를 사는 속물’이라 규정했습니다. ‘비곗덩어리’에서 공동체 전체를 위하여 희생을 하였지만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 군상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경영에서도 신의를 지킨 미생(尾生)을 기억해야 합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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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 2021-05-25 13:16:31
희생은 고통과 용기가 따르는데 우린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삶을 살고 있는건 아닐까?

크헉 2021-05-25 09:04:11
저 책 읽으며 인간들의 추악함에 분노했던 기억이...
나 라면 어땠을까?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요.

청신호 2021-05-24 21:38:46
그래도...
현실에 힘들어 삶에 치이는
애환속에서 살아가는 많은사람들이
이기적인 인간군상이 아닌
완생할 여지를 갖고,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란 사실에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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