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손순·손병희 선생 빛나는 '밀양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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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손순·손병희 선생 빛나는 '밀양손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6.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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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공(文孝公) 손순(孫順)의 석종(石鐘)의 기적과 의암 손병희(孫秉熙)선생의 애국정신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하였다.효의 상징인 석종을 바탕에 두고 태극으로 문중의 뿌리와 기상을 표현하였고, 용의 힘찬 위용과 햇불은 자손만대의 영원함과 번영을 상징하며, 조상의 충효정신을 우렁찬 종소리에 실어 만세에 울려퍼지는 기상을 나타내었다.
문효공 손순의 석종의 기적과 의암 손병희 선생의 애국정신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했다. 효의 상징인 석종을 바탕에 두고 태극으로 문중의 뿌리와 기상을 표현하고, 용의 힘찬 위용과 햇불은 자손만대의 영원함과 번영을 상징하며, 조상의 충효정신을 우렁찬 종소리에 실어 만세에 울려퍼지는 기상을 나타냈다.

약 2100년 전 진한 땅에 육촌중 무산 대 수촌장 구례마는 신라를 세운 원훈으로서 신라 삼대 유리왕 구년(서기32년)에 사성을 받았는데 이 분이 손씨의 원조다.

법흥왕 23년에 충렬공으로 시호를 받았고 무열왕 삼년에 문의왕으로 추봉되었다. 31세 휘 순은 석종의 기적이 있어 효로 명성이 천추에 빛나 신라 흥덕왕10년 을묘(서기 835년)에 월성군으로 책봉되고 시호는 문효이니 이 분이 시조로 다시 1세가 된다. 문효공의 효행에 대하여는 삼국유사 고려사 효행록 조선조의 삼강록 여지승람 명심보감 효행편 등에 수록되어 있다.

후에 관향이 셋으로 나뉘어 밀양, 평해, 경주다. 관향을 밀양으로 한 분은 7세 고려개국벽상공신 삼중대광사도 광리군 휘 긍훈이며 시호는 무열이니 전국 각지에 널리 번창하여 살고 있는 밀양손씨의 관조다.

30세 휘 화숙은 황강도 역승이니 이태조 6년 정축(서기 1397년)에 밀양에서 공주군 유등천면으로 집을 옮겨 지금의 대전시 서구 도마 변동과 내동이다.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600여년을 살아오고 있으며 역승공의 향사를 모시는 수정재는 시 문화재 자료 제30호이며 대전시 서구 변동에 위치해 있다.

44세 의암 휘 병희는 서기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선봉으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여 자주 독립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온겨레의 잠자는 혼을 일깨워 만세 운동을 일으켜 민족단결을 다지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밀양손씨는 충효와 청백을 가문의 근본으로 삼아 열사와 명경거유, 덕업문장과 충신효자가 면면히 배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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