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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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권태
  •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 승인 2021.06.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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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창궐한 지도 꽤 여러 날이 지났다. 사이비 종교단체의 무분별한 선교행위로 대구·경북 지역에 기하급수적으로 퍼지고 확산되어 이곳에서 머문다는 이유로 자가격리를 자처한 지도 거의 달포는 되어간다.

누우면 관속 같은 비좁은 공간에 고서 몇 권과 전공서적 등 어질러진 잡동사니에, 딱 코딱지만한 곳에서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일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이런 고난의 시간을 타개해 보고자 궁리하고 모색하다 짧디짧은 콩트 한 편을 지어 보았다.

세상이 늘 권태롭다. 사는 것이 무료하다. 아니 지겹다. 나날이 번복되는 일상, 아침에 일어나 똥 누고 씻고 오늘은 또 어제와 무엇이 다른 하루일까를 생각하다가 어제와 같은 시간에 영일만 온천탕으로 목욕을 온 이를 우연히 발가벗고 만나니 반갑기도 했고, 국물 있는 아침이 먹고 싶어 마스크 두 겹을 걸쳐 쓰고는 시내로 나가 사 먹은 해장국, 그 국밥을 저녁에도 먹고, 그 다음날 아침까지 먹으니 완전히 이젠 국밥이 질린다.

수십 년 만에 만난 도인인지 기인인지, 말을 키우고 양도 키우며 살고 있는, 본인의 말에 의하면 탕화살이 끼어 자연 발화와 실화로 현재 살고 있는 토굴이 세 번쯤 불타 이제는 있는 그대로 살아야 겠다는 좀 반연이 있었던 예전의 스님을 만나 도무지 권태로울 틈 없이 사는 그이와 점심을 함께 했던 적이 있었다.

통도사에서 비구계도 같이 받은 바 있고 개운사 살 때에는 명문 고려대에 유학 온 이름도 가물가물한 러시아 미녀인 묘령의 여인네에게 조차 지나치게 호감을 가져서 나만 마주치면 여러 번 이목구비 반듯한 묵설당의 안부를 묻고는 했다. 지난날의 그 묵설은 헌칠한 장부였는데, 홀로 살며 동물들 선방(그의 표현, 양과 말이 거주하는 축사)을 짓느라 작업복 차림에 조로한 얼굴이어 영 맘이 좋지 않았다.

홀로 끓여 먹는 섭생에 지쳤는지 예전의 잘나고 호남형의 몰골이 영 아니었다. 나도 쉰을 훌쩍 넘겼으니 비대해져 예전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이십오 년도 훨씬 넘어 만난 묵설당은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쿠바를 여러 해 전에 이미 다녀왔다고 하며, 송이를 팔아 다녀온 쿠바에서의 여러 사진을 보여주며 쿠바의 추억을 일러 줄 때 나는 갑자기 가보지도 못한 늘 그리던 쿠바가 갑자기 너무도 그리워졌다.

세상은 늘 소란스럽고, 소란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고, 헤겔이며 마르크스 모택동이며 장개석 등 혁명가이든 공무원이든 교육가이든 그들에게도 오늘의 일상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들도 늘 권태로움을 느낄 틈이나 있었을까?

하긴 여러 해를 갇혀 고행 중인, 한때는 이 나라 최고 권력자들의 감방에서의 일상보다는 나의 삶은 덜 권태로운 삶이니 일단은 대견 만족스럽다.

말도 타며 양털 자르고 송이를 따서 캐나다를 경유하여 쿠바를 다녀온 묵설의 용기와 가벼운 일상생활 영어쯤은 자신 있어 하고 늘 그의 권태로울 틈 없는 삶은 내게는 사뭇 충격으로 다가온다.

게으름이나 싫증, 혹은 지루함이나 권태로움. 세상 사람들의 상당히 고급스러운 증상, 고급스러우면 고급스러울수록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증상, 꼭 빠져나오거나 극복하거나 해소해야 할 증상인 권태는 상당히 매력적인 증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하루가 권태로울 수도, 어떤 한 시절이 권태로울 수도, 전 생애가 내내 권태로울 수도, 누군가의 묘비명에 “그는 생애 내내 줄기차게 권태로웠다”라고 시작하면 어쩐지 상당히 근사할 것도 같다. 게으름이나 싫증 혹은 귀차니즘 같은 단어를 쓸 때와는 달리 말이다. 어쩐지 상당히 근사할 것 같은, 이 막연한 느낌 때문에 고급스러운 증상으로서 권태의 정체성, 이제 권태란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오늘 하루 많은 생각을 했다.

시골 마을의 변화 없는 자연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지루한 삶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권태감을 견디기 힘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에 대한 성찰도 쉽지 않아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낸 소설가 이상의 수필을 차용하여 마친다.

“날이 어두워지니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 머리 위에 떠오르는 별조차 싱겁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마당에 멍석을 펴고 잔다. 그들이 그저 먹고 자는 시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절연된 지금의 내 생활은 극단적인 권태 그것이다. 불에 달려드는 불나비는 정열의 생물이다. 여기엔 그처럼 불을 찾으려는 정열도, 뛰어들 불도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들오들 떨릴 뿐이다.”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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