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랑방]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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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랑방]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 선민화(중국)
  • 승인 2021.07.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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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다문화가족사랑회와 함께 하는 ‘결혼이주여성 한국생활 정착기’(84)

“나는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나는 외국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년 전까지도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항상 경제독립을 강조하곤 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일을 해 왔던 나는 결혼하면 한국에서 취직이 어려울까봐 망설였다. 하지만 남편이 일자리 찾기 쉽다고 그 말을 믿고 한국에 왔다.

“It’s easier said than done.”

한국에 와서 모든 낯설었다. 문화와 음식이 중국과 다를 뿐만 아니라 언어까지 통하지 않아 무척 힘들었다.

중국에서 과일은 한 근으로 판매 하지만 한국에서 하나라도 포장해서 판매한다. 물론 가격도 비싸다. 한국 화폐가 익숙해지지 않아서 마트에 가면 가격을 다 중국 화폐로 계산해서 골라서 샀다. 내가 살던 고향은 매운 음식이 잘 먹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매운 음식은 대부분이다. 처음 매운 음식을 먹었는데 설사했다. 게다가 중국 음식은 주로 기름을 가득 넣고 요리하는 반면, 한국 요리는 대부분 기름 없이 조리한다. 그래서 늘 배가 고팠다. 심할 때는 기름통을 들고 기름을 그냥 마실까 생각했다.

2010년 4월 예쁜 딸이 태어나는데 기쁨도 잠시 육아 때문에 남편과 자주 다투었다. 예를 들면 아기가 열이 나면 중국 풍습은 아기 옷을 더 입혀주고 이불을 더 덮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아기 옷을 다 벗기고 물을 닦아 주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남편과 싸웠다. 사실은 남편의 방법은 더 과학적인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문화와 음식보다 가장 힘든 일은 한국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 언어가 안돼서 친구를 사귀기 어렵고 사회생활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남편이 출근하면 맨날 혼자 집에서 인터넷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같은 지역에 사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이 친구를 통해서 다문화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첫째 딸이 어린이집에 보내고 바로 공부하러 갔다.

그동안 언어 때문에 고생을 많이 겪으니 공부하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감사하며 열심히 배웠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서 듣고 메모를 하고 집에서 숙제도 빠진 없이 완성했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다문화센터는 참 좋은 곳이다. 덕분에 이중 언어 강사로 여러 초등학교에서 활동도 하고 통역하는 일도 해 봤다.

언어 실력이 늘어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이제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면 상대방 눈을 똑바로 볼 수 있고 내 의견도 바르게 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이웃의 도움을 받고 대전 산서초등학교 돌봄 교실에서 중국어 강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둘째를 출산한 후에 나는 둘 아이를 키우느라 일을 못 했다.

지붕이 새자 공교롭게도 밤새 비가 내린다. 남편이 사업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당장 쌀도 살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을 겪었다. 나는 하루하루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마트에 가는데 카드가 끊겼다. 나는 고민한 끝에 고용노동부 상담센터에 찾아가 일자리를 빨리 구해 달하고 청했다. 직원 분들이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근방 핸드폰 가게에서 취직했다. 한국에 있는 외국 사람을 대상으로 중고폰을 판매한 일이었다.

일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아이들 문제였다.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면 늘 긴장이었다. 아프다고 빨리 데리고 오라는 전화를 받으면 다른 직원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판매직이라서 집에 와서도 계속 일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그런데 가게에서 가끔 핸드폰 실종된 일이 생겨서 날 의심하는 직원 때문에 마음고생 하곤 했다. 그러고 1년 반이 지나서 나는 그 일을 그만두었다.

얼마 후 첫째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학교 근처에 중국어 공부방을 차렸다. 모든 일은 시작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공부방을 차리면 학생이 스스로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홍보를 여러 번 시도해도 효과는 별로 없었다. 나는 희망을 잃었다.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한동안 밥도 못 먹고 잠도 자지 못했다.

과연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더 이상 방법이 없을까? 고민한 끝에 나는 여러 창업 강좌에 참가하고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전화해서 도움을 받고자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절망할 때 인터넷으로 한 공고가 눈에 띄었다. 다문화 창업 여성 대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바로 그 기회를 잡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문가들이 오셔서 1:1로 마케팅과 회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공부방에 필요한 시설도 구했다. 학생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공부방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인생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성공이 올 것이다 믿는다. 때로는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 때로는 유아 문제로 인해 어쩔 줄 모른다. 때로는 한국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마음 불편하다. 하지만 한국은 우리 아이들의 모국이자 내게 제2 고향이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고 싶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 꿈을 이루어질 때까지 달려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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