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진인사대천명… 복숭아 한 알에 담긴 가치
상태바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진인사대천명… 복숭아 한 알에 담긴 가치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7.12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주는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소나기가 오거나 작은 비일지라도 그치지 않고 왔습니다. 장마철입니다. 하필이면 이때 복숭아가 출하됩니다. 복숭아는 해가 쨍쨍해야 당도가 오르고 단단한 육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처럼 아무 맛도 못 느낍니다.

올해는 봄이라 하지만 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에는 5월 중순이 돼야 추위가 물러갑니다. 복숭아는 꽃이 참 예쁩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지 않은 봄은 냉해를 입히기 십상입니다. 조금 지나면 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이 애기 복숭아를 무자비하게 솎아냅니다. 잘난 놈만, 강한 놈만 살아납니다. 하늘로 향하거나 너무 많이 달려있으면 약한 것부터 떼어냅니다.

6월 중순쯤 제법 색깔이 돌면 봉지를 씌웁니다. 병충해나 새, 뜨거운 햇살로부터 보호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철심이 들어 있는 노란 봉지를 열매에 감싸고 맨 위 철심 부분을 묶어줍니다. 6월 더운 여름철 고개를 들어 위로 쳐다보면서 하는 작업이라 때로는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7월 초순 이때쯤 되면 수확합니다. 하늘이 도와주어야 할 때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기 때문에 봉지 안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익은 순서에 따라 골라서 따고, 무게를 재고, 크기에 따라 박스에 담아냅니다. 복숭아는 2~3일 정도밖에 저장능력이 없어 나오는 시기도 조절하지 못합니다. 홍수출하를 할 수밖에 없어서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복숭아 농사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가 농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한계일까 생각해 봅니다. 작년에 우리 마트에서 지역 복숭아가 맛이 없다고 반품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이럴 땐 입장이 난처합니다. 조합원에게 말도 못 합니다. 그동안의 과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하게 ‘맛이 있다,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동안의 과정은 생략됩니다. 복숭아 박스에 재배 과정을 스토리로 만들어 함께 넣고 싶을 정도로 복숭아 농사는 우리의 인생사처럼 사연이 참 많습니다. “복숭아가 어디 공짜로 굴러옵니까?”

사람의 일을 모두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가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맹자(孟子)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알고, 자신의 본성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안다.”

하늘과 천명은 인간의 노력을 모두 다 한 후에서야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논점은 진인사(盡人事)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늘의 뜻이며, 하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력을 모두 다 한 후에서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를 수 있고, 이것이 ‘나의 천명(天命)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역량 밖의 일입니다. 결과가 나빠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는 신의 존재를 믿고 숭배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신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신에게 먼저 기도했다면 동양 사람들은 천명을 기다렸습니다.

간밤에 빗방울이 창가를 흔들고 있습니다. 많은 농부들을 이 깊은 밤에 단잠을 깨웠을 것입니다. 어느 분은 신에게 기도하고 어떤 분은 최선을 다했으니 그저 결과를 천명으로 기다릴 뿐입니다.

어디까지가 우리가 하여야 하는 한계인가 고민합니다. 우리의 하늘인 신이 존재한다면 ‘왜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여 농사를 짓는 착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가?’ 하고 항의하고 싶습니다. 신이 원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진인사(盡人事)를 묻고 싶습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풍경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