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뿌리] 조선조 정승 9명 나온 명문 '대구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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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뿌리] 조선조 정승 9명 나온 명문 '대구서씨'
  • 이지수 기자
  • 승인 2021.07.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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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하늘 은 國文 서氏 연결은 단합 [은 國文대구 · 은 大宗會종시(宗是) 一. 숭조사상의 앙양 二. 명예유 산의 보존전승 三. 애족화합의 전통확립 중시조유훈 물 태위선(勿怠爲善)
숭조사상의 앙양, 명예유산의 보존전승, 애족화합의 전통확립, 중시조 유훈 중시의 정신을 표현했다.

대구서씨는 고려조봉대부군기사소윤으로 휘는 한, 자는 인리인 공을 원조로 한다.

이에서 팔세를 전하여 휘 미성 공이 조선국 초기에 괴 생원 행 안주목사 증 달천부원군을 역임했다. 공이 두 아들을 얻어 장남의 휘는 거광으로 무과에 언양현감하고, 둘째 아들의 휘는 거정으로 의정부 좌찬성과 전문형을 역임했다. 호는 사가, 시는 문충공으로, 공의 후예를 사가공파라 한다.

현감공이 아들이 둘로 장남의 휘는 팽소 사헌부장령이고, 둘째 아들의 휘는 팽려 풍저창봉사로 공의 후예를 봉사공파라 한다.

장령공이 네 아들을 얻어, 장남의 휘는 후 대사간이요, 차남의 휘는 구 승사랑이요, 셋째 아들의 휘는 포로 무과를 지내고, 네째 아들의 휘는 고로 예조참의를 역임했다. 공이 네 아들을 얻었는데 장남의 휘는 대 장사랑이요, 차남의 휘는 엄으로 성균관사예를 지내고, 삼남의 휘는 해로 증 영의정 호 함재이고, 사남의 휘는 영 서흥해 공의 후예를 서흥파라 한다.

서흥공의 아들의 휘는 성이고 자는 현기며, 인양조의 명신으로 선조고명칠신의 한분이다. 판중숙부사를 역임했다. 공이 네 아들을 얻어 장남의 휘는 경우로 우의정을 지냈는데 호를 만사라 하여 공의 후예를 만사공파라 하고, 차남의 휘는 경수로 종진부전첨을 역임해 공의 후예를 전첨공파라 하고, 삼남의 휘는 경빈 첨지중추부사로 공의 후예를 첨추공파라 하고, 사남의 휘는 경주 승선조로 장옹주하여 봉 달성위해 공의 후예를 도위 공파라 한다.

대구서씨를 7파로 나누어 영조 을미보범례에 종훈으로 명시한 바 있다. 조선조에 대구서씨 후손이 크게 번창하여 명덕이 높아 명문거벌로 지칭되어 왔으며 이를 류별로 기록하면 정승 9명, 대제학 6명, 판서 33명, 참판 18명, 국구 1명(의빈, 부마) 1명, 관찰사 6명, 대장 6명, 원향 3명, 증시 38명이다. 과방에 문과가 140명, 무과 106명, 진사 108명, 생원 106명으로 잉위관명대족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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