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옥수수 한 자루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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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옥수수 한 자루의 가치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7.19 11: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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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기른 옥수수를 직접 쪄서 먹으면 더 맛이 있습니다. 옥수수의 일생도 순탄치 않습니다. 5월의 어느 봄날이라도 봄이 봄 같지 않아서 어린잎이 추위의 기습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봅니다. 수확을 할 때는 너무 힘이 듭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한여름이라 땀이 물 흐르 듯하고, 목은 타서 연신 찬물을 들이켜야 합니다.

이번에 수확한 옥수수는 대략 1000개 정도입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옥수수 가격을 살펴보니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충 30개에 1만 원 정도 합니다. 넓은 밭에 그 많은 옥수수를 돈으로 환산하니 30만 원 정도입니다. 나의 노동 가치가 겨우 30만 원 밖에 안된다고 생각하니 헛 웃음이 나옵니다.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하면 옥수수 한 알도 귀한 존재입니다. 마음으로는 태산 같은 존재지만 현실인 시장 가격으로는 고급 인력의 값싼 희생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합니다. 농민의 심정이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소비자는 생각 없이 그냥 옥수수를 삽니다. 우리는 일상처럼 고민 없이 그냥 옥수수 가격을 받아드립니다. 어느새 통상적인 상식처럼 농민에 대한 생각이 작동 불능입니다. 오로지 값싼 가격과 맛에만 몰입하고 함께하는 공동체를 외면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t, 1906~1974)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쓴 책입니다.

전범 재판에서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던 것과 달리 아이히만은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재판정에서 자신은 국가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법을 준수하고 국가의 명령에 따라 이행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죄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의 입장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죄는 사유(思惟)의 불능성, 그중에서도 타인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다.”

평범한 사람이 악조차도 일상처럼 성실하게 반복함으로써 윤리관이 무뎌져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게 속이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자칫 악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옥수수는 일상적으로 값이 30개에 1만 원 정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농민의 수고를 생각지 않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옥수수 재배 농민들이 우리 땅에서 생존능력을 상실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농민들의 땀에 대한 배려의 부재, 생각의 불능이란 죄를 범합니다.

옥수수를 한입 먹으면서 생각 없는 머리를 깨는 순간이 정말 필요로 합니다. 옥수수를 먹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죄는 사유(思惟)의 불능성, 그중에서도 농민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다.” 옥수수에 대한 농민들의 입장을 생각할 시간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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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호 2021-07-22 14:30:59
옥수수뿐 아니라 농산물도 상품이기 때문에 , 소비자는 비하인드스토리보다는 품질좋은 상품을 요구하기에...
농민은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더 질좋고, 맛있는 상품을 생산해야 되겠지만, 자연 조건에따라 상품의 가치가
달라져 농민은 어렵고 힘든것 같습니다.
이러한 농민을 너무도 잘 아시는 조합장님이시기에 옥수수 한자루에서도 농민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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