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촌은 ‘국토의 정원’, 농민은 ‘국토의 정원사’
상태바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농촌은 ‘국토의 정원’, 농민은 ‘국토의 정원사’
  •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 승인 2021.08.03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등장하는 수레바퀴

중국 사상은 유가(儒家) 사상이 지배담론입니다. 이에 대한 비판담론이 노장(老莊) 사상입니다. 노자(老子)는 유교와 달리 우리에게 다양한 생각의 틀을 제공합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11장에 나오는 수레바퀴 이야기입니다.

三十輻共一轂(삼십폭공일곡)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 통에 있지만
當其無有車之用(당기무유차지용) 그 바큇살이 없는 빈 곳 때문에 바퀴로써 쓰인다.

埏埴以爲器(연식이위기) 흙으로 빚어서 그릇을 만들지만
當其無有器之用(당기무유기지용) 그 가운데 비어있기 때문에 그릇으로 쓰인다.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는 바퀴의 본분과 바퀴의 유익함에 대하여 논할지 모르나, 노자는 바퀴에 비어있는 빈 공간을 봅니다. 노자는 바퀴가 비어 있기 때문에 유익하다고 보고 비어있음이 곧 쓰임의 이유라고 봅니다. 가득 채우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릇 처럼 비어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지 않으면 쓸모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도덕경》의 매력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생활에서 생각하는 가치와 보는 관점을 뒤집어 보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가치를 놓치지 않는 방법입니다.

마르셀 뒤샹 作 '샘'

현대미술 역사 있어서 마르셀 뒤샹(1887~1968)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뒤샹은 1917년 어느 전시회에 작품 《샘, Fountain》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발표하기 전에는 사람들이 미리 보지 못하도록 천으로 덮어 놓았다고 합니다. 모두들 어떤 작품일까 매우 궁금했는데 막상 개장일에 열어보니 공장에서 생산된 양변기 하나였습니다. 이미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에다 자기 이름을 썼을 뿐입니다. 작품 제목은 《샘》입니다.

미술관에서 관객들이 이 작품을 처음 본다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나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미술관에서 보던 사람들이 화장실에 있어야 할 소변기 하나가 떡하니 미술관에 있으니, 저것을 예술이라고 보아야 하는 건가 하고 놀랐을 것입니다.

뒤샹은 소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뒤샹이 만든 하나밖에 없는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더 이상 변기가 아니라, 《샘》이라는 예술작품입니다. ​뒤샹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르인 오브제(objet) 양식을 만든 사람입니다. 오브제란 일상의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시각은 현대미술 역사 중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미쳤으며, 대중예술과 개념미술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현대미술의 특징은 이런 것도 예술일까 하는 깊은 회의로부터 출발했고, 이는 기존 시각을 뒤집는 반란입니다.

임영호 동대전농협 조합장

요즘 벼가 한창 자라고 있는 넓은 뜰에 가보면 그 푸르름과 둥실둥실 떠 있는 뭉게구름이 어울려 장관입니다. 폭염이 연일 계속돼서 사람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벼가 커가는 들판은 무슨 문제가 있냐며 노란 들판을 꿈꾸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도시의 회색 공간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농촌의 녹색공간이 특별합니다. 우리는 농촌에 일반화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못 살고, 가난하고, 불편하고, 노인분들만 계시고, 희망이 없는 곳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농촌이나 농민의 역할을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농촌이나 농민에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을 공급하고,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관과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물을 담수할 수 있는 홍수방지 기능과 수자원을 확보하게 합니다. 더군다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기능인 농촌 나름의 지역사회 유지와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공익적 기능을 담당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최고 상위 법인 헌법에 이러한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반영하고 농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국토를 자랑하는 스위스는 먹거리를 생산하고 식량안보를 책임지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농업과 농촌, 농민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농업과 농촌, 농민의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자리매김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농업정책을 연구하는 김육곤 님이 농민을 ‘국토의 정원사’로 불렀습니다.

다행히 2020년부터 우리도 공익형 직불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농민의 역할과 농촌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농민도 ‘국토의 정원관리사’에 걸맞게 가축 분뇨나 영농폐기물 처리, 마을 경관개선을 위해 농촌 공동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여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경쟁력은 농민들이 창조한 아름답고 깨끗한 농촌경관입니다. 노자와 같이 바퀴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과 뒤샹과 같은 관점의 반란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아토피를 이기는 면역밥상
우리 단체를 소개합니다
임영호의 조합장 일기
가문의 뿌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