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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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갓집 육개장
  •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 승인 2021.08.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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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백세시대에
반백 년쯤 겨우 살아온
죽기에는 좀 미련이 남을 나이의 한 사내가
과로로 사망하여
발인하고 나면 화장장에서 태울 몸뚱이를
부패하지 말라며 냉장고에 의탁하였다

한 영혼 마지막 길
서러운 길
갑자기 떠나는 그를 배웅하려
슬퍼하며 통곡하고
각처에 흩어져 있던 친족과 친지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모두가 까만 상복차림이었으나
경황이 없던 몇몇은 평상복으로
울고 있는 상주를 위로하고
미처 입관도 하지 않아서인지
상복도 갖추어 입지 않은 황망한 상주들
어떤 이는 신발을 정리하고
하얀 봉투에 조의금을 담고
방명록이 이름 석 자를 쓰고
막 급히 도착한 조화와 조기를 자리에 세우고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어떤 이는 국밥을 비우고
또 어떤 이들은
막걸리를 소주를 맥주를
한 두잔 씩 나누며
죽은 자가 마지막 베푸는
온기와 온정이 담뿍 서린 한 끼를 들며
보내고 싶지 않은
어쩔 수 없이 먼저 가야만 하는 이를
가슴으로 애달퍼하며
이생의 마지막 의식이지만
때로는 눈물 훔치며 경건하게
또 낄낄 웃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너스레를 떨고 수다를 떨며
고스톱도 치고
죽은 자가 베푸는 마지막 잔치를
한껏 즐기다가
미련을 미처 마무리도 못 한 채
허전해진 마음 스스로 달래며
각자의 보금자리로들 돌아간다

어떤 이는 삼일장 내내
또 어떤 이는 몇 시간을
또는 몇 분 남짓을
상가에 잠시 머물다
죽은 자의 마지막 베풂이고
남은 자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 주는 국밥 한 그릇을
그렇게들 비우며
추모의 정을 안고
귀갓길을 서두른다

산 자들은 죽은 자가 베푸는
육개장 한 그릇이
더없이 맛났던 기억을
이 생애 내내 안고
덧없다는 인생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성찰해 본다

죽은 자가 베풀었던
어제 늦은 저녁의 국밥 한 그릇을 먹어 본 자는
이 아침의 허망함을 반드시 안다

탄탄(불교중앙박물관장, 자장암 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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