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전씨는 옛 중국 전국시대 순임금의 후예인 전씨가 세운 제나라가 있었는데 후제의 왕자가 동쪽으로 건너왔다고 전한다.
시조인 담양군의 휘는 득시로 고려 의종(115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좌복야 참지정사로서 시호는 충원이고, 2세의 휘 자존은 추원밀사로서 시 정안이고, 3세의 휘 승윤은 문하시중 고양군으로 시 정절이고, 4세의 휘 공일은 평장사 상주국 흥양군으로 시 공간이고 5세의 휘 영은 첨의중찬으로 시 인열이고 , 6세의 휘 희경은 첨의사인이요. 7세에 이르러 3형제가 태어났다.
첫째의 휘 녹생은 호 야은으로 대사헌으로 시 문명이고, 둘째의 휘 귀생은 호 뇌은으로 밀직제학으로 시 문혜이고, 셋째의 휘 조생은 호 경은으로 찬성첨의부사로 시 문원이다. 일문형제로서 학행과 충절로 고려말의 전씨 삼은이라 칭하며 포은, 목은, 야은과 같이 십은 중에 세 분이며 사문동의 현인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3파로 크게 나뉘었다가 담양으로 통일하였다.
충의로는 임과 윤 득우부자와 봉 곤종형제와 택과 윤양과 유용과 영방과 언용과 견용과 우추와 시우와 경란과 대두와의 흥제와 세록 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혹은 참모로 혹은 순절로 죽백에 명성이 높고 자천공 운상은 통어사로 해학선과 독륜차를 제작하였고 담양전씨의 완벽한 족보를 편집하였으며 석천공 일상은 홍주성에서 역적을 포살하였다.
일본이 국권을 찬탈함에 의거하여 살신성인, 구국의 충정을 다하신 분으로는 명운, 운벽, 태진, 상무, 양진, 열, 재호, 응주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많은 문무석덕과 강개지사가 배출되었다.